▲ 이재 기자

정부는 국회가 만든 법을 집행한다. 그게 행정이다. 일은 자동으로 되는 법이 없어서 사람이 붙어야 한다. 공무원을 두는 까닭이다. 공무, 그러니까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무의 끝에서 시민을 직접 상대하는 이들은 공무원이 아닐 때가 많다. 공무를 직업으로 삼아 위험을 마주하는 사람들, 공무직이다. ‘공무원 아니었어?’ 하고 의아해 할 정도의 공적 업무를 하지만 공무원은 아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공무직들을 만났다.<편집자>

글 싣는 순서

① 가축위생방역사
② 고속도로 순찰원
③ 국가보훈처 의전단


축사 밖으로 내민 소 대가리에 노끈을 칭칭 감는다. 소는 싫다는 듯 순한 눈을 부라린다. “당겨!” 방역사가 노끈을 힘껏 당겨 소 대가리를 한쪽으로 젖힌다. 대가리에 감은 노끈을 옆 기둥에 묶는다. 또 다른 방역사가 소의 목에 주사기를 꽂는다. 뻘건 피를 뽑으면 소가 아프다는 듯 투레질을 한다. 가끔 앞발을 축사 밖으로 내밀기도 한다. 소의 버둥거림이 크면 종종 목에 꽂은 주사기를 놓치기도 한다. 이날도 소 앞발에 하마터면 손을 밟힐 뻔했다. “쇠뿔에 받혀 얼굴을 다치는 경우도 많아요.” 피를 다 뽑은 방역사들은 미안하다는 듯 소 대가리를 어루만지며 노끈을 푼다. 그렇게 축사 한 곳에서 소 다섯 마리의 피를 뽑았다. 구제역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시료(혈액)를 채취하는 일이다. 소 결핵 시료 채취는 축사당 한 마리, 구제역 시료 채취는 축사당 다섯 마리다. 새하얀 방역복을 입은 방역사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오늘은 소가 얌전했다”고 한마디씩 한다.

쇠똥 냄새 가득 찬 축사
소가 발버둥치자 주사기를 놓쳤다

지난 15일 오전 9시께 강원도 속초시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강원도본부 북부사무소 앞에는 가랑비가 내렸다. 사무실에서 그날 업무를 확인한 전광수(56) 방역사는 손아무개(28) 방역사와 방역차량에 탑승했다. 방역사는 안전을 위해 2019년부터 두 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경력 11년차인 전 방역사와 4년차인 손 방역사는 5개월째 손발을 맞추고 있다.

방역차량은 일반 SUV다. 차량 트렁크와 뒷자석에는 여러 벌의 방역복과 방역장비를 비롯해 방역물품이 가득 실렸다. 9시30분께 사무소에서 출발했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첫 행선지는 방역소다. 인근 방역소에서 차량을 소독하고 방역사도 자외선 소독과 손 소독을 한다. 마치 세차장처럼 생긴 건물로 들어서자 전광수 방역사가 직접 소형 방역기를 들고 차안을 소독했다.

“자외선이라 직접 보면 위험해요.” 밝은 빛이 쬐는 개인 방역실 안에서 전 방역사가 주의를 줬다. “살짝 쳐다본다고 눈이 상하지는 않지만 방역제가 사람 몸에 좋은 건 아니니까요.” 서둘러 눈을 돌렸다.

이날 방역사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120마리 넘는 소를 키우는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한 농장이다. 방역소에서 30분 정도 달려 농장에 다다랐다. 입구에 차를 세운 두 방역사는 곧장 트렁크 문을 열고 방역복을 입었다. 방역사들은 절대 사복차림으로 농장을 방문하지 않는다. 옷을 갈아입을 만한 곳이 따로 없는 터라 가랑비가 내리는 날, 방역사들은 트렁크 문을 지붕 삼아 전신을 가리는 방역복을 입었다. “비가 오면 그냥 맞으면서 입어요.” 농장은 쇠똥 냄새와 여물 냄새가 뒤섞여 공기가 퀴퀴했다. 전광수 방역사는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비가 와서 습도가 좀 있지만 덥지는 않아요. 그리고 소는 돼지보다 얌전해서 일하기 수월하죠. 돼지 농장을 가보셔야 하는데….” 옆에 선 손 방역사가 말을 보탰다. “돼지 농장 갈 때 저는 옷 다 벗고 팬티만 입어요. 땀으로 다 젖거든요.” 그저 웃었다. 소 다섯 마리에서 피를 뽑은 방역사들은 축사 안에서 방역복을 모두 벗고 나왔다.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이날 방역사들은 삼포리 인근 인정리 소 농장 한 곳과 고성군 간성읍 어천리 산란계 농장, 왕곡마을 소 농장 한 곳을 더 방문했다. 산란계는 달걀을 낳는 닭이다. 식용으로 키우는 육계와는 다르다. 뉴캐슬병 감염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60마리의 닭에서 피를 뽑았다. 닭은 소보다 핏줄이 좁아 시료 채취에 실패하는 경우도 잦다. 날카로운 뒷발톱에 할퀴는 일도 예사로 일어난다. 물론 쪼이기도 한다. 이렇게 일하면 점심은 미루기 일쑤다. 이날도 1시가 다 돼서야 수저를 들었다. 15분 만에 뚝딱 비웠다. 다음 일정이 너무 밭게 잡혔다.

▲ 이재 기자
▲ 이재 기자

지난해 강원도 휩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주말 소집돼 이틀 밤샘 뒤 또 현장 투입

만약 가축 감염병이 확인되면 어떻게 할까. 또 다른 농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질문을 받은 전광수 방역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날부터 밤샘이죠.”

지난해 8월7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소집했다. 신고를 받고 채취한 시료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견됐다. 당시 농림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초동조치를 이렇게 적었다. “중수본은 신고시 신속한 초동조치를 통해 확산 차단에 총력 대응 중이다. 발생농장에 대한 이동제한 및 사람·가축·차량 출입통제와 사육 중 돼지 2천400마리 긴급 살처분을 실시 중이며 신속하게 완료할 예정이다.”

실상은 이렇다. 전광수 방역사는 중수본 회의가 열리던 주말 그날 개인용무를 보다 소집을 받아 긴급히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와 동료들은 초동방역 장비를 싣고 현장을 찾았다. 피서차량으로 가득 찬 도로를 피해 비포장 도로 샛길을 달렸다. 현장에 도착하면 곧장 차단방역을 위한 바리케이트를 치고 출입통제 입간판과 소독기를 설치한다. 업무를 시작한 이후 방역복은 필수다. 입고 간 옷을 갈아입거나 할 시간은 없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당장 교대도 어렵다. 8월 한여름 찜통더위에 땀이 비 오듯 흘러 신발이 질척거릴 정도여도 참아야 한다. 쉬는시간 같은 건 없다. 새벽에도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차량과 사람을 통제하고 기록하고 소독하고 보고한다. 이런 업무가 그달 9일까지 이어졌다. 꼬박 2박3일을 버텼다. 3일차에 겨우 교대인력이 투입됐다. 전 방역사는 차량 소독과 사람 소독을 하고 세차장까지 들른 뒤에야 가까스로 퇴근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업무가 다 끝난 것은 아니어서 전 방역사는 퇴근 하루 만인 11일 다시 현장에 투입됐다. 사설 업체가 살처분을 마치고 매립까지 완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다시 통제업무를 해야 한다.

가축 감염병 예방·진단의 시작
“자부심? 잘 모르겠어요”

끝일까. 인근 인제군에서 다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 가축 감염병이 유행한 것이다. 이번에는 전 방역사가 교대인력으로 같은달 17일부터 현장을 지켰다. 철야가 이어졌다. 몸은 녹초가 됐다. 살처분의 비릿함이 현장을 휘감았지만 전 방역사는 느낄 새도 없었다고 한다.

전 방역사는 “방역사의 시료 채취는 가축 감염병 예방과 진단의 시작이고, 국민 식탁의 안전을 확보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자긍심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힘든 업무를 이겨 낼 정도로 나랏일 한다는 자부심은 꽤 강했다.

그런데 국가는 그렇게 대우하지 않았다. 이들의 신분은 무기계약직이다. 나랏일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공무‘원’이 아니라 공무‘직’이다. 기타공공기관인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일반직 55명을 제외하면 1천200명 대부분이 그렇다.

처우도 낮다. 1월 이들이 속한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을 때 연평균 임금은 3천570만원으로 다른 공공기관 무기계약직의 3천651만원보다 낮았다. 공무원과는 비교하기도 어렵다. 전 방역사는 “무엇보다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며 “일이 힘들어 금방 관두는 경우도 많고 생각보다 전문적인 일이라 유입도 별로 없어 현장에서는 항상 일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갈수록 자긍심만으로 버티기 버겁다. 이날 함께 동행했던 손 방역사는 축산대학을 졸업하고 방역사의 길을 걷는 인재다. ‘직업적 자부심이 크겠다’는 말을 건넸더니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피식 웃고 만다. 전광수 방역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질병관리의 중요성이 알려졌지만 가축방역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조명도 받지 못하고 정당한 보상도 없다”며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더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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