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사진 왼쪽 세 번째)이 9일 오전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3회 철의 날’ 기념행사에서 회사 관계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장 부회장은 <매일노동뉴스>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행사장을 떠났다. <홍준표 기자>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고 이동우씨 사고와 관련해 동국제강측이 사고 발생 80일이 지나도록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과 사측은 일곱 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장세욱 부회장은 9일 오전 서울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23회 철의 날’ 기념행사에서 <매일노동뉴스>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행사장을 떠났다. 질의 과정에서 동국제강 간부 이아무개씨가 기자의 신체를 잡아당기는 등 물리력을 써 취재를 방해했다. 이후 폭행에 당사자가 사과했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동국제강의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사과문에 “더 철저히” 추가 요구
“징벌적 손해배상도 합의안 제외”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동국제강은 이날 공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유족의 제안에 답변서를 보내왔다. 유족은 그동안 △장세욱 부회장의 공개 사과 △사고조사보고서와 재발방지 대책 제공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답변서에서 사측은 사과문에 “더 철저히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담겠다고 유족측에 전했다. 유족은 동국제강이 사고예방을 다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고예방 조치를 했지만 사고를 못 막았으니 앞으로는) 더 철저히’ 하겠다고 책임을 슬쩍 떠넘긴다는 것이다. 실제 사고 당시 포항공장에서는 천장크레인에 신호수 미배치, 작업 전 전원 차단 등 기본적인 사고예방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배상 부분과 관련해 동국제강측은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합의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담겠다는 입장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기준에 따라 배상하라는 유족측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법률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에 대해 손해액의 5배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도록 정하고 있다.

유족은 사측이 협상을 원점으로 돌렸다고 비판했다. 지난 2~3일 겨우 진행된 협상 자리에서 이뤄졌던 최소한의 합의마저 동국제강이 수차례 번복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일 동국제강 교섭단은 유족과의 한 차례 협상을 진행한 뒤 돌연 교섭을 중단하고 회의실에 나타나지 않아 유족측의 반발을 샀다.

유족측이 교섭해태를 비판하며 동국제강 건물 로비에서 농성하자 밤 늦은 시각에 다시 교섭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협상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 7일 보내온 사측의 답변서는 유족측 요구를 다시 번복하는 내용이 담겼다.

▲ 지난 3월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사고로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전 포스코센터 앞에서 장세욱 부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
▲ 지난 3월21일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사고로 숨진 고 이동우씨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9일 오전 포스코센터 앞에서 장세욱 부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

유족 “장세욱 부회장, 책임 회피”

유족측은 결국 포스코센터를 찾아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 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은 “회사는 사과도, 유족에 대한 피해배상도,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안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며 “동국제강의 ‘안전을 최우선 경영 가치로 두고 선제적 예방관리를 하겠다’는 말은 죽음을 감추는 요란한 피리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권영국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는 “열심히 일하다 회사 잘못으로 죽어 간 고인의 목숨을 담보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장세욱 부회장이 ‘철의 날’에 모여 안전문화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냐”며 “유족이 서울에 올라와 분향소를 차린 지 52일이 지났지만, 회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흥정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임신 5개월째인 이동우씨 아내 권금희씨도 분노했다. 그는 “남편의 사고는 기본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고, 살인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런데도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돈을 투자하기보단 합의금을 줄여 본인 이익만 추구하기 위한 계산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족측은 장세욱 부회장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고, 공개 사과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또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과 정당한 배상을 요구했다.

‘철의 날’ 행사장 진입 차단에 충돌
동국제강 간부, 취재진 질문하자 잡아채

기자회견이 끝난 뒤 충돌이 발생했다. 유족측은 장세욱 부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행사장에 진입하려 했지만, 행사 주최측에 가로막혔다. 포스코센터 관리업체가 건물 회전문을 잠가 유족과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장세욱 부회장을 만나기 위한 것일 뿐인데 진입을 막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고 항의했다.

행사장에서는 동국제강쪽의 취재 방해가 이뤄졌다.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행사 이후 나오는 장세욱 부회장에게 질문하는 순간 동국제강 간부 김아무개씨가 두 팔을 잡아채며 취재를 막았다.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장 부회장은 묵묵부답으로 자리를 떠났고, 취재 방해로 추가 질문은 이어지지 못했다.

간부 김아무개씨는 취재 방해를 항의하는 기자에게 “유족과 참가자들이 로비에 있어 일원으로 착각했다”며 “기자 신분인 것을 알았다면 잡아끌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김씨는 물리력 행사 당시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기자가 재차 사과를 요구하자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행사장에는 철의 날 기념행사를 수많은 취재진이 허가를 받고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날로 이동우씨가 목숨을 잃은 지 81일째를 맞았다. 여전히 그는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있다. 유족은 지난 4월19일 동국제강 본사 앞에서 분향소를 설치하고 5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이동우씨 장모는 농성장에서 암과도 싸우고 있다.

▲ 고 이동우씨 유족측이 9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철의 날 행사가 진행되는 포스코센터 진입을 시도했지만, 건물 관리인이 가로막고 있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
▲ 고 이동우씨 유족측이 9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철의 날 행사가 진행되는 포스코센터 진입을 시도했지만, 건물 관리인이 가로막고 있다. <고 이동우 동국제강 비정규직노동자 산재사망사고 해결 촉구 지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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