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업안전보건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성규(62·사진) 직업환경의학전문의(가천대 길병원)는 우리나라 ‘직업병 연구의 산증인’이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직업병 역학조사 업무를 오랫동안 맡았던 그가 얼마 전 국제산업보건학회장에 당선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제산업보건학회(ICOH)는 직업병이라는 개념조차 희박했던 1906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처음으로 직업병 관련 학회를 열었다. 이후 3년마다 대륙을 돌며 산업보건과 관련한 국제대회를 열고 있는데 무려 1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7일 오전 인천 가천대 길병원에서 강성규 위원장을 만나 중대재해가 일어나는 원인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전보건 교육·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

업무상 사고는 인과관계가 명확하다. 추락·끼임같이 어떤 이유 때문에 노동자가 사망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업무상 질병은 인과관계를 따지는 게 쉽지 않다. 의학에서는 확률을 따진다.

“의사의 언어는 확률이에요. 어떤 질병이 있을 때 살 확률과 죽을 확률이 어떻게 되는지를 말하죠. 업무상 질병도 통계상 어느 정도 확률인지를 말합니다. 발병의 원인이 직업적 요인인지 아닌지를 말할 때 모호함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럴 때 사회적 판단이 개입합니다. 의사의 언어와 달리 법률가의 언어는 확실하죠. (업무관련성이) 있다, 없다 혹은 유죄, 무죄처럼요.”

질병과 달리 업무관련성이 아주 명확한 중대재해는 예방 방법도 명확하다. 사고가 발생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안전보건교육을 안 받아서, 혹은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산재사고 원인을 말할 때 흔히들 불완전 행동, 불완전 상태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완전히 잘못된 거죠. 애초에 노동자가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집중을 못하고 딴 생각을 잠시 했다고 죽거나 다치는 게 마땅한가요? 추락사를 막기 위해 안전모를 쓰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시스템비계를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비웃을 일 아냐
사고 나면 반드시 노동환경 다시 만들어야”

“서울지하철 성수역·강남역에서 발생했던 스크린도어 수리노동자 사고가 구의역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죠. 협력업체 노동자는 전동차를 세울 수 없어요. 그렇다면 전동차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이 스크린도어를 여는 열쇠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고는 늘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면 그것을 반드시 막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지게차가 후진하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는) 신호수가 없어 문제라고 하는데 신호수는 없는 게 더 좋습니다. 지게차와 다른 건설기계 장비가 동시에 움직이다 신호수가 죽는 경우도 있거든요. 지게차에 후방카메라를 설치하고 운전석 센서 경고등을 달아 지게차 운전자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가 핵심의제로 재해조사를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재해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그 점을 바꿔야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면 재해조사를 하는 전문가의 용기가 필요하죠. 사실 그동안 전문가들이 비겁했어요. 논쟁에 휘말리기 싫으니 두루뭉술하게 재해조사 보고서를 적게 되죠. 그래야 공격을 안 받으니까요. 중대재해가 터지면 결정적인 원인을 찾아서 전국에 있는 사업장에서 그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전문가와 행정의 역할입니다.”

50명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보건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의 중요한 과제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강 위원장은 ‘최저입찰제도’를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하청에 재하청 다시 재하청으로 이어지다 보면 안전보건 관리비용이 원래 계산한 것의 30~40%로 줄어듭니다. 최저입찰제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싼 가격을 낸 곳에 일을 맡기는 방식이다 보니 제일 먼저 안전비용이 사라지게 되죠. 최저가입찰, 최저가 납품이 없어져야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제도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안전투자 여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비용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산업안전보건위가 정부의 소규모 사업장 지원 확대를 논의하는 이유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노동자 건강에 국제적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

ICOH는 스위스 터널공사 때문에 만들어졌다. 이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 150명이 십이지장충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사망한 사고가 학회 창립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위스를 연결하는 터널공사에서는 노동자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이것을 기념하는 국제산업보건회의가 1906년 열렸다.

16대 학회장을 맡은 강 위원장은 첫 연설에서 ‘노동자 건강의 국제적 책임’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만 안전하다고 우리가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코로나19가 보여줬다. 원진레이온 사태가 증명하듯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은 글로벌 공급사슬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재사망자 가운데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4위일 정도로 심각하다. 노동자 건강의 국제적 책임에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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