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규 가천대 길병원 교수(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원장)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현장에 적용된다.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기업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대재해는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사업주의 고의·과실에 의한 사고’다. 비용절감 등을 위해 안전설비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거나 안전상 문제를 방치해 사고로 이어진 경우다. 반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사고’다.

산재노동자 보상 여부를 판단할 때는 사업주의 과실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 사업주가 잘못했든 아니든, 일하다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는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 19세기 말 독일·프랑스 등에서 산재보험 개념이 발전하면서 산재노동자나 그 가족의 생활안정을 위해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사고에 대해서도 보상이 이뤄지도록 제도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산재노동자가 사업주 과실을 입증해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조건도 제도 속에 녹아들었다.

문제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데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느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발생시 사업주의 고의·과실에 의한 사고인지,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사고인지를 구분하지 않는다. 사업주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라도, 사망사고 발생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영계가 중대재해처벌법을 가리켜 과잉입법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산재 사망사고 3건 중 2건, 사업주 고의·과실 탓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사회에 도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단 한 문장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산재 사고사망자 발생률은 유럽국가에 비해 세 배나 높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자 10만명당 산재 사고사망자는 4.32명인데, 2018년 기준 유럽연합(EU) 15개 국가 노동자 10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는 1.46명이었다.

더욱이 유럽 국가들이 산재예방을 위해 오랜 기간 사회적 노력을 투여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최근 이들 국가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 대부분은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

바꿔 말해 유럽 국가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 즉 우리나라 산재 사망사고 3분의 2는 사업주 고의·과실에 의한 사고로 볼 여지가 크다.

따라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재예방이라는 본령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고의·과실에 의한 사고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주가 평상시 안전보건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적절히 수행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사고를 일으킨 근본원인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면 사고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필수다.

정부지원 확대해야 소규모 사업장 안전 담보

안전 확보 노력에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안전경영에 대한 대기업 경영책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비용투자가 확대된 것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산재 사망사고의 70%가 발생하는 소규모 영세업체들이다. 예를 들어 하청 납품업체의 경우 원청이 요구하는 최저가 입찰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안전비용도 줄여야 할 형편이다. 따라서 안전투자 여력이 없는 소규모 영세업체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그 비용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적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공식 발족하고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산재 사망사고 원인조사 강화방안과 소규모 사업장 안전보건 지원방향 등을 놓고 노·사·정 당사자와 안전보건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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