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현대중지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달라졌다. 일주일 남짓 기간 동안 포스코·현대삼호중공업·현대중공업에서는 원·하청 노동자 3명이 숨졌는데 사고 직후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잇따라 내놓았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들 기업은 재해자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사과를 미루다 사회적 공분이 일어야 머리를 숙이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중대재해 책임을 원청으로 확장한 중대재해처벌법 효과처럼 보인다. 바람직한 변화지만 대부분 기업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빠져 있어 ‘여론 대응용’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사과문에 “모든 구성원 안전에 책임” 담아

이달 19일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입사 5일 만에 20미터 높이 철체 계단형 수직 사다리에서 추락사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전 구성원의 안전을 지켜야 할 대표이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위험요소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안전관리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청노동자를 구성원으로 칭하고 안전 책임을 약속한 것이다. 이후 사고 수습 과정도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 유가족은 회사와 보상 합의를 마무리했고, 금속노조 현대삼호중공업지회와 회사는 27일 임시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지회 관계자는 “이례적인 일”이라며 “당시 사고 상황을 정확히 목격한 사람이 없어서 사고 원인을 두고 물고 늘어질 수 있었을 텐데, 대표이사가 바로 중대재해를 인정하고 사과했고 협력사 대표들도 빈소에 가 고개를 숙였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에도 임시 산업안전보건위는 열렸는데 책임자 처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노조 요구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삼호중공업에서는 지난해 7월25일 용접작업 중 화기감시 업무를 수행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업무 중 쓰러져 숨졌다. 당시 재해자는 ‘원인불상의 심장마비’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현대삼호중공업 사고 뒤 재해가 발생한 포스코와 현대중공업도 지난 20일과 25일 각각 대표 명의로 사과문을 내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서효종 건설플랜트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최정우 회장이 발 빠르게 사과한 것은 유족에 대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지난 20일 업무 중 재해로 숨진 재해자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신규직원으로 노조에 가입한 지 한 달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사과는 했는데 …
재발방지 대책 이행 의지 있나”

현장 노동자들은 대표이사의 사과가 달갑지만은 않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이를 위해 노동자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서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24일 크레인 오작동으로 오아무개씨가 숨졌는데, 사고 후속조치에 대한 논의는 미루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관계자는 “사고 후 회사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서 산업안전보건위 회의나 후속조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지만, 회사는 일관되게 조사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이야기를 듣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는데,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지부는 2020년 4분기 산업안전보건위부터 이번 사고 발생 업무와 관련해 “한 명의 노동자가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크레인 작업은 위험하다”며 2인1조 작업을 수차례 요구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2020년 5월 중대재해가 반복되자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이 직접 사과하고 조선산업 대표를 교체했다. 이후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인적·물적·재원 투입을 약속했지만 지난해에도 안전사고가 잇따랐고 그해 한영석 대표이사는 노동단체에 의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포스코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달 20일 포항제철소에서 입사해 일한 지 보름 남짓 된 하청노동자가 ‘안전지킴이’ 업무를 하다 석탄운반 장치에 치여 숨졌다. 회사가 강조해 온 10대 안전철칙을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효종 국장은 “포스코는 출입 인원에 대해 TBM(Tool Box Meeting, 작업 전 간이회의)과 안전교육을 강조하지만 사고 현장에 있던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회사로부터 고인이 특별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며 “회사에 문제제기하면 안전교육일지를 가져오겠지만 정작 설비가 얼마나 위험한지, 위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참여권 보장해야”

노동계는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야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실화될 수 있다”며 “산업안전보건위원,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노동자대표의 현장점검 등 활동시간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고용노동부 사고조사·특별근로감독 과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하청노동자와 소수노조의 참여권 보장과 원·하청 산업안전보건위 법제화도 개선돼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한편 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적극적인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난 25일 저녁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사업부 1·2야드 가공소조립 공장의 작업 일체를 중지시켰고, 같은날 노동부 포항지청은 원·하청 책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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