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블록체인, 로봇, 3D프린터는 4차 산업혁명의 대표주자다. 이 가운데 실물이 뚜렷한 3D프린터는 4차 산업혁명의 꽃처럼 보였다. 코딩교육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언어를 익히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학교현장 곳곳에 3D프린터가 속속 진입했다. 정부도 화답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보통신진흥기금을 활용해 지원 예산을 처음 편성했다. 이 결과 2020년 기준 초·중·고교 5천222곳에 3D프린터 1만8천324기가 보급됐다. 그리고 그것은 가시를 드러냈다.

초미세먼지보다 작은 나노입자,
코점막 뚫고 뇌까지 직접 침투

“아들을 살리지 못한 죄인이 됐고, 아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그 새벽 시간이 되면 아직도 눈을 뜹니다.”

서정균씨 목소리가 목메여 떨렸다. 서씨는 2020년 7월29일 희귀암인 육종암으로 27개월을 투병하다 끝내 세상을 떠난 경기도 한 과학고 교사 고 서울씨의 아버지다. 그는 27일 오후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3D프린터(3D펜) 실태와 직업성암 재해인정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차 국회 의원회관을 찾았다.

당시에는 몰랐다. 3D프린터가 뿜어 낸 유해물질이 아들의 몸을 어떻게 찔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은 3D프린터 만지는 것을 좋아했다. 2013년 특성화고 재직 시절부터 학생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3D프린터를 활용한 서울씨는 3D프린터를 도깨비방망이라고 불렀다. 뚝딱하면 눈앞에서 물건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부 예산으로 만들어진 학교의 ‘무한상상실’은 3D프린터로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 보물단지를 맘껏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은 당연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초미세입자, 그중에서도 작다는 나노입자 수준의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보급형 3D프린터는 필라멘트 소재에 고열을 가해 인쇄하는 방식이다. 이때 나노입자(100㎚ 이하)와 유기화합물 같은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이런 초미세입자는 너무나 작아 코점막 같은 인체의 기능을 무력화하고 뇌까지 직접 침투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나노입자보다 큰 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 나노입자 수준의 초미세입자에 달라붙어 인체로 흡입되는 다양한 필라멘트 첨가물이 있다. 어떤 첨가물이 얼마나 달라붙어 있는지는 아직 검증된 연구도 없다. 보이지 않는 가시에 찔린 서울씨는 발병률이 0.01% 정도로 희귀한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 서울씨는 사망 2개월 전인 2020년 6월27일 잠든 아버지의 방을 찾아 “아버지 살고 싶어요”라고 울먹였다고 한다. 서정균씨가 잊지 못하는 그 새벽이다.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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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지난해 자체조사에서 114명 유증상자 확인
공무상 재해 인정도, 유증상자 조사도 안 하는 정부

서정균씨가 아들의 죽음과 3D프린터의 관계를 파악한 것은 이후다. 같은 학교 교사와 경남의 또 다른 과학고 교사가 같은 육종암을 앓았다. 모두 3D프린터로 수업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몇 차례의 언론 인터뷰와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교육부가 지난해 5월 학교 5천754곳을 조사한 결과 유증상자가 11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정균씨는 지난해 2월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재해를 신청했다.

현재 정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필두로 교육부와 중소벤처기업부·환경부·고용노동부가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학교와 산업현장에 3D프린터의 유해성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각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재차 가다듬고 있다. 특히 아무런 근거도 없이 ‘친환경 소재’라고 홍보하고 있는 3D프린터 소재에 대한 개선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시에 찔린 피해자 구제는 먼 얘기다. 다음달이면 서울씨의 공무상 재해 신청이 1년이 된다. 인사혁신처는 아직 나노입자가 육종암 발병의 원인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씨뿐 아니라 114명의 추가적인 유증상자 실태조사도 계획이 없다.

서씨는 토론회에서 정부의 대책마련과 아들에 대한 공무상 재해 인정을 요청했다. 그는 “정부는 아들과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선생님, 그리고 수업받은 학생을 찾아 원인을 규명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무한상상실이 운영되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며 “아들 사망을 산재로 인정해 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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