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은미·노웅래·정춘숙 국회의원실과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 주최로 24일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우리나라 직업성 암 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윤진하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각종 화공약품으로 가득하고 금속 분진이 날리는 곳에서 일하지만 안전교육이나 특수건강검진은 꿈도 못 꾸고 있어요.”

김정봉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분회장은 귀금속 세공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얼리 1세대 노동자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혈액암과 백혈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수백명의 주얼리 노동자들은 진폐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분회장에 따르면 주얼리 노동자들의 이 같은 질환은 “유해화학물질을 다루고 금속 분진이 날리는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탓”이 크다. 그런데 주얼리 노동자 특수건강검진 실행률은 3.6%에 그친다. 주얼리 사업장 중 작업환경측정을 시행한 사업장도 5.6%에 그친다.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우리나라 직업성 암 실태와 개선방안’에서 김 분회장은 “산업안전교육은 없었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는 찾기조차 어려웠다”며 “서울 주얼리 업체들은 10명 미만 규모가 많고 안전에 대한 사업주들의 인식이 낮다”고 토로했다. 이날 토론회는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119가 주최했다.

주얼리 노동자 특수건강검진 시행률 3.6%
“3D프린터 장려하면서 유해성 안내는 없어”

주얼리 노동자들처럼 우리나라 사업장 곳곳에서는 환경 탓에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3D프린터 프린팅 작업자들 상황도 마찬가지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 사람)에 따르면 정부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3D프린터를 전국에 5천222개 초·중·고등학교에 보급했다. 보급률은 43.45%다. 그런데 최근 3D프린터 프린팅 작업을 하던 고등학교 교사들이 육종암에 걸리는 일이 잇따라 발생했다.

육종암은 뼈와 지방·근육 같은 전신의 근골격 조직에서 발생하는 악성종양이다. 노동계는 “3D프린터 작업을 할 때 나오는 유해물질이 병을 발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날 권 노무사는 “정부는 3D프린터 사용과 교육을 장려하면서도 유해성 정보를 제공하거나 안내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직업성 암 산재 신청률이나 승인율은 낮은 편이다. 제철산업은 폐암을 포함한 각종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공정이 존재하지만 산재 신청은 극히 드물다.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119에 따르면 포스코의 경우 지난 10년간(2010년부터 2019년까지) 직업성 암 산재신청 건수가 4건에 불과하다. 유럽국가의 경우 직업성 암 사망자는 전체 산재 사망자의 53%를 차지하는 반면 한국은 6%에 그친다.

“병원 내 감시체계 구축하자”
“임상 의사가 산재보험 소견서 쓰면 혜택 줘야”

직업성 암 관리체계를 개선할 방법이 있을까. 권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사업장 유해물질에 대한 교육을 사업주 의무사항으로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권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고예방을 비롯한 내용을 교육하도록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사업주 의무사항을 명확히 이행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진단서를 산재보험 소견서로 사용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임상 의사들이 산재보험 소견서를 쓰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절차를 개선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병원 주치의가 산재 소견서 작성을 쓰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여서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기조차 어렵다”는 노동계 의견을 반영한 제안이다. 권 노무사는 “임상의사 선생님들이 산재보험 소견서를 써 줄 만큼 여유가 없다”며 “산재보험 소견서를 쓰면 수가를 올리는 등의 방안으로 혜택을 주는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직업성 암과 관련해 사업장 중심 감시체계가 아닌 병원 내 감시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이 소장은 “사업장 중심 감시체계인 산업보건 서비스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며 “작업환경측정으로 발암물질 노출을 관리할 수도 없고, 특수건강진단으로 조기발견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경우 최근 6년(2014~2019년) 동안 6만4천398명을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한 결과 직업병 유소견자는 10명에 그쳤다.

이 소장은 “암환자 대부분은 대학병원급에서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는데, 필요하면 (이곳에서) 직업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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