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공단이 22일 반도체공정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백혈병·비호지킨림프종 등 혈액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20만1천57명 반도체 노동자를 추적관찰한 결과로 의미가 적지 않지만 협력업체 노동자가 포함되지 않은 점, 암질환 발병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협력업체 노동자로 연구 대상을 확대하고 직업병 원인을 규명하는 후속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세정 등 반도체공정에서 위험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협력업체가 조사대상에서 빠졌다"며 "2011년 이후 혈액암 감소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전이된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노무사는 "세정업무·정비업무(PM)를 보통 고위험 업무로 분류하는데 2000년대 이후 점차 사내외 하청업체로 해당 업무가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위험업무가 넘어가면서 질환 발생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2010년 이후 반올림에 피해 제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사인 A사 노동자 B씨는 "현재 사내협력업체가 8곳 정도 있는데 40~50%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하청노동자에게 업무를 맡기면 원청 책임이 축소되니 안전관리나 업무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원·하청 구조에서 원청은 사고 책임 회피가 쉬워진다. 2013년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불산누출 사고로 협력업체 노동자 한 명이 사망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임원과 회사에는 책임이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안전보건공단은 '반도체 제조공정 근로자에 대한 건강실태 역학조사'에서 암질환의 구체적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모든 화학물질 정보를 확보할 수 없었고 축적된 작업환경 정보도 부족했다. 반올림은 "작업환경과 화학물질 정보를 충분히 확보하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재인정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유해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면 노출기준만 엄격하게 따질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산재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국제적으로도 반도체 직업성암에 관한 논문은 11개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개인이 과학적으로 암과 반도체공정의 관련성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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