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내년 1월27일 시행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시행령에 관해서 치열한 논쟁이 있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논쟁이 있다 보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알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놓치기가 쉽다. 최근에 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서 비로소 도급인의 처벌이 가능해지지 않았냐는 질문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 아무래도 이 법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① 하청이 아닌 원청 도급인의 책임 ② 현장소장 등 실무자가 아닌 경영책임자의 책임 ③ 상한형이 아닌 하한형의 규정을 강조하다 보니, 기존 법으로는 원청 처벌이 어려웠다고 인식된 것 같다.

하지만 이 법의 제정일인 올해 1월26일부터 약 1년 전인, 2020년 1월16일부터 시행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 덕분에 도급인의 형사책임 범위가 이미 넓어진 상태다(63조와 167조). 김용균법에 의하면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도급인은 자신의 근로자에 대해서 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관계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해서도 진다(사망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 김용균법 이전에는 도급인이 책임을 지는 경우도 매우 좁았고, 그조차도 1년 이하 징역으로 형량도 낮았던 것이 대폭 개선된 것이다.

김용균법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로 ‘관계수급인’이란 도급이 여러 단계에 걸쳐 체결된 경우에 각 단계별로 도급받은 사업주 전부를 말한다(2조9호). 그러므로 도급인은 다단계 하도급에 걸쳐 있는 모든 근로자에 대해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진다는 의미다. 둘째로 “도급인의 사업장”이란 사내도급은 당연히 포함하고, 사내도급이 아니어도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소”(제10조 제2항)로서 대통령령과 고용노동부령에 열거된 15군데 장소를 말한다,

정리하면 김용균법은 도급인의 형사책임 범위를 넓히고 처벌수위도 높였다. 다만 김용균법, 즉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라고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하는 세부적인 항목을 위반했을 때 처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 실무자가 아닌 경영책임자가 그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고 이행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 책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재해예방을 위해서 져야 하는 의무가 어떤 내용인지를 정하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건설안전특별법’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제 사각지대였던 건설공사 발주자의 의무를 명확히 정하는 법이다. 다수의 사례에서 건설공사 발주자는 설계변경이나 공기단축 등을 요구해 사고의 근본원인을 제공했음에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 2심 판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처벌을 피해 가는 주된 이유는 발주자는 돈을 대고 일을 맡긴 사람일 뿐이지, 감리사나 시공사와 같은 전문지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자가 안전자문사를 선임해서 안전에 관한 자문을 받도록 하고, 자신이 자문받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서명해 이것을 인허가권자에게 제출하도록 정했다(법안 10조2항). 그럼으로써 발주자에게 공사의 위험을 충분히 인지시키고, 나중에 가서 그 위험을 몰랐다고 발뺌하는 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한마디 더하면 경찰이 수사하는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헝법 268조)는 규제내용이나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은 관점에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따진다. 대신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도와 전문성은 떨어진다. 노동자의 투쟁이 법률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어떤 기관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는 알아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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