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향 무소속 의원과 사무금융노조 주최로 9일 오후 서울 중구 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피해실태 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보건소에 코로나19 검사받으러 가고 다들 정신이 없는데 (에이스손해보험쪽이) 보건소에는 에이스손해보험에서 왔다고 말하지 말고 메타넷엠플랫폼(하청)에서 왔다고 말하라고 공지가 오더라고요. 원청이 참, 너무 어이가 없었죠.”

지난해 3월 코로나19가 덮친 에이스손해보험 구로 콜센터에 근무했던 노동자 ㄱ씨의 말이다. 국내 코로나19 사업장 집단감염 첫 사례로 남은 이곳에서 처음 유증상자가 발생한 것은 같은해 2월25일이지만, 그보다 3일 전 같은 건물(코리아빌딩) 10층 노동자가 먼저 증상을 느꼈다. 3월2일에도 10층 또 다른 노동자가 먼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조였다. 이미 콜센터에는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노동자 ㄴ씨는 “회사에서 조금만 (조치를) 해 줬으면 안 걸리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콜센터 첫 확진자는 같은달 8일에 나왔다. 자발적으로 보건소를 찾아 검사한 다음날 확진판정을 받자 회사에 통보한 것이다. 건물 내 첫 유증상자 발생 후 콜센터 집단감염 발생 전까지 에이스손해보험이 방역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마스크 두 번, 손세정제 두 번 지급한 게 전부다. 12차례 방역도 했다지만 노동자들은 “작은 분무기로 센터를 소독하라고 지시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확진자 발생 이후 상황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당시 정부 발표에 따르면 3월25일까지 코리아빌딩에서만 216명 중 94명이 감염됐다. 이들의 가족 가운데도 34명이 추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콜센터에서는 143명중 89명이 감염됐다. 최종적으로 구로 콜센터 관련 확진자는 170명이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책임 원·하청 ‘모르쇠’
집단감염 경험 뒤 우울증 22.7%, PTSD 28%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다. 에이스손해보험은 지난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윤미향 무소속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해당 사무공간(구로 콜센터)은 메타넷엠플랫폼이 전적으로 보유·관리하는 공간”이라고 답했다.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구로 콜센터의 집단감염 당시 문제가 된 것은 노동환경이다. 상담사는 1미터도 안 되는 간격으로 앉아 침방울을 튀기며 하루 8시간을 일했다. 회사 기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민원 소비자 상담사나 인바운드 업무를 하는 CS노동자는 오후 6시를 넘어 저녁 7~8시까지 일했다. 사무금융노조 에이스손해보험콜센터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179만6천원이다.

아프면 쉴 권리는 없었다. 쉬면 임금이 깎인다. 필수업무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방침 때문에 노동자들은 월별 휴가일정을 만들어 휴가를 썼다. 그해 2월부터 시작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전조에도 노동자들이 기침을 참아 가며 일을 한 배경이다.

집단감염 1년반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노동자들은 여전히 코로나19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미향 의원과 노조, 사무금융 우분투재단이 공동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감염 확진자 54명·비확진자 41명을 실태조사한 결과 감염 확진자 54명은 회복 후에도 운동시 숨참(57.41%), 탈모(38.89%), 기억력 감퇴(38.89%), 집중력 저하(35.19%) 같은 증상을 느꼈다.

정신건강은 특히 심각하다. 무응답자 7명을 제외한 88명 가운데 20명(22.7%)이 우울증을 앓았다. 7명은 자살생각을 했고, 2명은 실제 자살시도를 했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의심돼 적극적 상담이 필요한 인원은 27명으로 28.4%에 달했다. 소방관의 PTSD 유병률 15.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증상이 코로나19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들이 다수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첫 확진 이후 “콜센터 운영 지속” 결정
자가격리 노동자에 일 시키고 임금 미지급

이유는 감염자를 보는 사회와 회사의 시선 때문이다. 사회는 코로나19 관련자를 피했다. 조사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탑승하지 않으려 하고, 병원 이용도 제약됐다. 치료거부도 경험했다. 사람들이 감염병 환자로 취급하는 느낌과 수근거림, 시선을 견뎌야 했다. 보건당국의 동선공개에 따른 ‘악성 댓글’ 피해는 별론이다.

회사는 더했다. 에이스손해보험은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콜센터 운영 지속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노동자에게는 자택으로 노트북을 발송했다. 집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자가격리 중인 상담사들도 일해야 했다. 일종의 병가기간에 일을 시킨 것이다.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조차 이들의 분노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집단감염 1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울분에 찬 이유를 이해한 것은 원·하청 사용자의 안이한 조치에 대한 분노, 업무 정상화 과정의 피해, 고립 등을 면밀히 살핀 이후에야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현장 노동자는 여전히 치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조지훈 지부장은 “콜센터 감염병 확산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감옥 같은 환경에서 장시간 근무를 하는 고통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더 이상 운에 의존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에이스손해보험은 “당사는 전문 콜센터 운영사인 메타넷앰플랫폼을 통해 고객센터 업무를 위탁 운영해 왔으며, 양사간의 파트너십 아래 상담원들에게 치료 및 회복, 안정에 필요한 충분한 유급휴가 및 재택근무 환경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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