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가 국제간호사의 날인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현장 좌담회를 열었다. 신분노출을 우려해 동물탈을 쓴 PA간호사들이 근무환경 실태를 증언하고 있다. <임세웅 기자>

“외부에는 처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집도의를 대신해 인턴이나 다른 PA간호사와 전공의를 데리고 집도의가 오기 전까지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충수돌기와 담낭, 위장 절제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식자에게서 받아 온 장기를 수혜자에게 알맞도록 수정하는 일도 했습니다.”(12년차 영상의학과 A간호사)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대강당에서 너구리·곰·강아지·팬더 가면을 쓴 네 명의 간호사가 의사 가운을 입고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의 목소리는 변조됐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가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연 병원 현장의 불법의료 실태 보고 현장 좌담회 모습이다.

의사 대신 하는 PA간호사 증가

의사의 일과 다름없는 일들을 하는 이들은 PA(Physician Assistant·진료보조)간호사다. 의사가 해야 하는 수술환자 상담, 수술 및 시술, 처방, 의무기록 작성을 대신한다. PA간호사는 전국에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PA간호사는 증가 추세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립대병원 PA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의 PA간호사는 지난해 7월 기준 1천20명이었다. 2018년에 850명, 2019년 951명이었다.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조가 지난해 9월15일부터 10월15일까지 의료기관 22곳에서 일하는 간호사 1천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현장 간호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PA간호사는 전공의가 없거나 인기 없는 과에 많이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인 PA간호사 288명 중 65명이 내과 소속으로 가장 많았다. 일반외과가 49명, 흉부외과 35명, 중환자실이 34명으로 뒤를 이었다.

문제는 PA간호사 업무가 의료법에 따라 처벌해야 할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것이다. 의료법 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1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간호사 업무는 같은법 2조에 따라 환자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 보조 등이다.

“의사 늘리거나 PA간호사 양성화해야”

PA간호사는 경력이 많은 간호사가 하기도 하지만 경력이 없는 간호사가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PA간호사 중 간호경력이 10년을 넘는다고 답한 간호사가 65명으로 가장 많았다. 7~10년 경력이 48명으로 뒤를 이었다. 46명은 간호 경력이 없이 바로 PA간호사로 일했다고 응답했다.

PA간호사는 경력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이직하기 어렵다. 실제 간호사로 일한 경험이 경력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A간호사는 “의사의 업무를 한다며 우쭐했던 적도 있었지만, 출퇴근 기록 외 모든 업무가 의사의 이름으로 처리되는 것을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며 병원에 메인 간호사라는 생각에 절망했다”고 말했다. 10년차 PA간호사로 일하는 B간호사는 “병원과 의사는 우리를 불법으로 낙인찍으면서도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우리를 쓰고 있다”며 “새벽에 나와 수술하고 휴일도 없이 일하는 우리를 제도권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의사수가 부족하면 의사가 늘어야 하는데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하는 상황”이라며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대한간호협회가 모여 PA 합법화, 전문간호사 확대, 업무분장 명확화 등 여러 해결책을 놓고 토론회를 하자”고 요구했다. 의협과 전공의협의회는 환자 안전을 이유로 PA간호사 제도화를 반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