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가 9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가 던진 문제 해결을 위한 총파업을 결의했다. 11월 예고된 민주노총 총파업에 두 달 앞선다. 올해 산별중앙교섭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는 시점에 맞췄다.

노조 핵심 요구안은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과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 △불법의료 근절 △교대근무제 개선과 주 4일제 시행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고용보장 △산별교섭 제도화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나순자<56·사진> 위원장을 만나 9월 총파업에 나선 이유와 전망을 들었다. 나 위원장은 “역대 최대 파업 규모인 8만 조합원이 참여해 최소 1주일 이상은 이어질 산별파업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2004년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 5일제와 산별교섭을 요구하며 1만명이 참가하는 총파업을 14일간 벌인 바 있다.

공공의료 확충 안 되면 노동조건도 개선 안 돼

- 왜 총파업인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의료현장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환자 열 명 중 여덟 명을 전체 병상의 10%가 안 되는 공공의료가 전담했다. 갑작스럽게 환자가 폭증했다. 병원 간호사들이 소진됐다. 새벽 5시에 나와 오후 4시까지 밥 한 끼를 먹지 못하고 일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지방의료원들은 기존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동시키고 코로나19 환자를 받았다. 지방의료원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민간병원의 병원비를 지급할 수 없는 환자들은 집으로 향했다.”

- 대정부교섭 요구안의 핵심은 뭔가.
“코로나19가 던진 과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자세한 방안을 제시하며 양이 많아졌지만 결국 공공의료와 의료인력 확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도 공공의료 확충에 포함된다. 불법의료 근절, 교대근무제 개선과 주 4일제 시행,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고용보장은 보건의료인력 확충에 포함된다. 대정부협의와 산별교섭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 의료인력 확충은 노조의 오랜 바람이다.
“간호사 인력은 항상 부족하다. 매번 말한다. 인구 1천명당 간호사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 3분의 2 수준이고, 입사 1년 내에 간호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절반 수준이라고. 2018년 기준 간호사 인력은 인구 1천명당 3.7명으로 OECD 평균 8.9명에 비하면 절반 이하다. 인력이 부족하니 그만두는 간호사가 생기면 일이 남은 간호사에 쏠리고, 그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간호사들이 바로 그만두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부각됐다. 간호사 부족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지금이 문제해결의 최적기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간호사 면허를 갖춘 사람 41만4천983명 중 현장 간호사는 21만5천293명으로 52% 수준이다. 같은 해 신규 면허 취득자 2만1천629명 중 45.4%인 9천842명은 1년 이내에 병원을 떠났다.

-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과 공공의료 확충은 어떤 관계인가.
“뗄 수 없는 문제다.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된다. 의료가 공공성보다 수익성에 치중하면 사람을 뽑지 않고 노동강도를 높이려 하기 때문에 노동자 노동환경이 악화한다. 노동환경 악화는 환자 안전 위협으로 직결한다. 의료공공성 확충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돈보다 생명을’이 우리 슬로건 아닌가.”

간호인력 노동조건 개선 위해서라도
의대 정원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일

- 지난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에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간호사 문제를 제기했다.
“간호인력을 확충해도 의사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문제다. PA간호사는 전공의 수준의 수술 등 의료업무를 하는 간호사다.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사가 의사업무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부족한 의사수를 메우기 위해 PA간호사로 내몰린다. 간호사 인력을 늘려도 의사가 부족하다면 간호사가 PA간호사가 될 것이다. PA간호사는 불법의료에 내몰리고,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점 해결을 위해서 PA간호사 양성화, 전문간호사제 활성화, 의사·간호사 업무 명확화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회, 대한병원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요구할 예정이다.”

- 주 4일제 시범 도입과 교대근무제 개선 요구도 제시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와 박영선 전 서울시장 후보도 공약으로 주 4일제를 이야기하는 시기다 .노동환경 개선 투쟁을 하면서 변화가 있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병원 인력문제 해결은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밤근무 교대제 개선과 주 4일제 노동시간 단축이다. 고령화 시대, 의료는 성장하는 산업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일하는 ‘좋은 일자리’를 양성할 수 있다고 본다.”

“말만 하고 실천 않는 정부”

- 코로나19 백신이 나왔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병원노동자들의 어려움은 많이 해소될 것 같다.
“세계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포함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백신만으로 종식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라고 했다. 설령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전염병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등 5~6년 주기마다 전염병이 발생하고 있다. 그때마다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커진다.”

- 지난해 구성된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와 올해 초 구성된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지 않을까.
“요구안을 들어준다면 파업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이제껏 해 온 정부의 움직임으로 볼 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조는 정부와 공급자·가입자·시민단체가 모이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이용자 중심 의료협의체에서 이야기를 해 왔다. 문제의식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해결책을 논하는 자리가 없었다. 해결책이 나온다 해도 실현되지 않는다. 메르스 이후 감염병전문병원에 대해 논의했지만, 계획까지 세우고 난 뒤 실현하지 않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는 권역별감염병전문치료병원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조선대병원이 호남권 감염병전문기관으로 지정됐다. 부지선정과 이전 지연 등으로 실제 설립되지는 않았다. 나머지 권역은 논의가 없다가 코로나19가 유행하고 나서야 지난해 7월 순천향대부속천안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을 각각 중부권역과 영남권역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올해 권역감염병전문병원 1개소를 추가 구축할 계획이다.

- 총파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시민들은 안전하고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게 될 것이다. 이번 파업을 ‘국민 파업’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난해 시민 건강권을 외면하고 집단이기주의적 행태를 보인 의사들의 집단행동과는 다르다. 코로나19가 사회에 던진 과제인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인력 확충을 통해 의료체계와 시민사회, 노동자 모두에게 필요한 변화를 이뤄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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