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청년 조합원 중 ‘말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노골적인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세대교체의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당선한 박인호(49·사진) 철도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1일 임기를 시작했다. 새 집행부 화두는 노조 내 세대 갈등 해소다. 2005년 대규모 공채 이후 10년 넘게 신규채용이 원활하지 못했던 탓에 최근 5년 새 2030 조합원 비율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기준 2030 조합원 비율은 32%다. 같은 기간 노조간부 평균 연령은 50세에 이를 정도로 고령화돼 있었다. 청년 조합원의 노조 불신은 크다. 지난해 6월 노조가 조합원 5천500명에게 물었더니 5년 미만 청년 조합원 44%는 노조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뢰한다(22%)는 긍정응답보다 두 배 높은 수치다. 현장에서도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인식차, 갈등은 계속 감지되는 상황이다.

22일 <매일노동뉴스>가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박인호 위원장을 만나 세대 갈등에 대한 고민과 사업계획을 들었다. 박인호 위원장은 “노조 생존을 위해서라도 젊은 조합원의 참여가 없으면 안 된다”며 “조합 내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는 노조 기획국장을 맡던 2003년 6월28일 철도구조개혁법안 입법중단을 요구하는 전면파업에 참여했다가 해고됐다. 16년간의 해고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2018년 4월 복직했다.

“친해져도 세대 간 ‘벽’ 느껴”

- ‘성찰, 공감 그리고 전진’을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했다. 어떤 의미인가.
“최근 20~30대 조합원이 전체 조합원 중 30%를 넘어서면서 현재 노조 상황을 답답하게 느끼는 조합원들이 생겼다. 지난 활동을 ‘성찰’하고 조합원 생각에 ‘공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철도노조가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철도 민영화를 막아 냈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지만 투쟁 과정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 보니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나 의견수렴이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일상사업도 부실했다. 청년 조합원들이 노조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도록 노조의 일상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해 ‘전진’해 나가려고 한다.”

- 노조 안 세대 갈등이 체감할 정도로 심한가.
“2018년 복직해 그해 입사한 신규 노동자 29명이 있는 동기회에 들어갔다. 제가 있던 곳(청량리고속기관차승무지부)은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는데도 벽을 느꼈다. 2018년 동기들은 회사에 대한 불만뿐 아니라 노조에 대한 불만,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쏟아 내면서도 저한테는 이야기하지 않더라. 예전에는 종종 대규모 입사가 있어서 기관사와 부기관사 나이 차가 많이 나 봐야 세 살, 다섯 살이었지만 지금은 아버지하고 아들뻘이다. 함께 일하고, 합숙지에서 밥도 같이 먹고, 자는데 처음 몇마디 하고 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동료들이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아래부터 민주주의 실현 위한‘크루 플랫폼’ 선보여”

- 특히 공정담론을 두고 세대 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청년 조합원도 비정규직 업무를 정규직화하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정규직화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설득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남는 것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공정하기 때문에…. 여기서 딱 막혀 버린다. 생각을 좀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링 안에서 경쟁하는데 룰이 공정하냐, 공정하지 않냐는 중요하다. 경쟁에서 특혜나 배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동의한다. 그런데 누가 링 안으로 몰아넣었는지, 링에 오를 기회에서 박탈된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로 의식이 확장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공정이 맞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기존처럼 강요나 설득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공정담론을 재구성하고, 청년 조합원에게 문제의식을 던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세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전 집행부 때부터 대의원 청년할당제를 도입하고, 지부장을 세 번 이상 연임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을 두는 등 변화를 꾀했다. 청년할당제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였다. 지부장 3선 제한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는 취지다. 올해는 정책대의원대회에 ‘크루(Krwu·철도노조) 플랫폼’을 새로 적용한다. 아래부터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의견을 모아 내려 한다. 최종적으로 정책대대에서 확정된 안건을 대정부 요구안, 단체협약안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물론 걱정도 있다. 품도 예산도 많이 든다. 어떤 안건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내부 균열을 촉진할 수 있는 의제가 나올 수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제자리에 맴돌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크루 플랫폼’은 정책 안건 현장발의부터 정책 확정까지 장장 5개월(5~9월 예정)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다. 먼저 지부에서 정책 토론을 진행해 안건을 직접 발의한다. 각 지부별 안건을 지방본부별 진행되는 3일간의 정책포럼에 상정해 논의한다. 정책포럼은 타운홀미팅 등 논의가 용이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포럼에서 결정된 안건을 포함해 중앙집행위원회·중앙위원회에서 추가된 안건을 지부·지방본부에서 재논의하는 과정을 거친 뒤 크루 플랫폼에서 최종 정책안을 확정한다.

“대정부 교섭 열기 위한 투쟁 집중할 것”

- 노동시간단축, 교대제 개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근무체계 개편은 내부적인 현안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제다. 3조2교대를 4조2교대로 전환하고, 교번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근자들의 실질임금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4조2교대 전환은 50% 정도가 완료됐다. 내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개편한 것인데, 나머지 50%는 인력이 추가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이 문제에 관련해 대답하지 않고 있다. 또 실질적으로 인력충원을 하려면 기획재정부의 결정이 필요한데, 기재부도 인력충원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공사도 노조가 만족할 만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대정부교섭을 열기 위한 투쟁에 집중하려 한다.”

- 국토교통부의 4차 철도발전기본계획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도로 포화상태는 유지된다. 친환경적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교통수단은 철도밖에 없다는 것이 노조 ‘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대안 연구용역’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모달시프트(Modal Shift), 즉 교통수단 전환 내용이 국토교통부 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에 담겨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철도가 기존에 떠안은 부채문제를 정리하고,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 통합 필요성도 재확인되고 있다. 두 회사의 경쟁체제가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하지만, 철도에서 가장 좋은 서비스는 좌석을 늘리는 것이다. 통합이 이뤄지면 열차 증편효과를 가져오고, 590억원의 비용이 절감된다. 또 운임을 10% 낮출 수 있다.”
 

▲ 정기훈 기자

“코로나19로 재정적자 심화, 정부재정 지원해야”

- 공공철도를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K-방역 주역은 의료진이지만, 한국 경제가 선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궤도노동자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철도가 민영화된 상태에서 코로나19를 맞았다면 운행을 멈췄을 것이다. 어느 회사가 50%만 표를 팔고, 열차를 운행하겠나. (한국철도와 SR은 열차 내 거리 두기 권고를 따라 예매를 50%으로 제한했다.) 승객이 감소했지만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이어 갈 수 있도록 모든 열차를 운행했다. 그런데 정부는 감염과 적자를 무릅쓰고 운행해 발생한 적자 1조4천억원을 공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는 철도노동자에게 격려와 응원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 노조와 ㈔평화철도 등 60여개 단체가 판문점선언 3주년을 맞는 27일 부산역에서 남북철도 잇기 한반도평화 대행진을 시작한다.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 고향이 평양 인근이다. 철도공사에 들어왔을 때 실향민들을 제가 모는 열차에 태워, 고향에 모셔다드리고 싶은 게 꿈이었다. 그런데 북미관계, 남북관계가 안 좋아지면서 남북철도 연결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분들과 철도노동자가 함께 정부가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말고 행동하라는 취지로 부산역에서 임진각까지 걸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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