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글 싣는 순서>
① 직무급제 ‘동상이몽’
② 실체 없는 정부의 직무급제, 외국은
③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위한 변화들

직무급제는 일한 기간을 따지는 연공성과 일의 성과를 평가하는 성과급보다 하는 일의 어려움과 역할을 따져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고령인구 증가와 출산률 하락으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 IT기술의 빠른 진보로 숙련기술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워지는 노동시장 변화와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했다는 연공급제 비판이 겹치면서 임금체계 대안으로 떠올랐다. 노정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직무급제 도입을 놓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한다. <매일노동뉴스>가 직무급제를 둘러싼 논란과 도입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짚어봤다.<편집자>

임금체계 사이에 우열은 없다. 박우성 경희대 교수(경영학)는 “어느 임금체계가 우월하다고 할 수 없고, 정서와 문화에 따라 적합한 임금체계를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연공급제가 주류로 자리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고성장이다. 고성장기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매년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가 유리했다. 한 번 자리 잡은 연공급제는 기업별 노조와 함께 성장했다. 호봉을 40개 이상으로 쪼갠 임금테이블이 정착했다. 연봉계약이 확산했지만 여전히 연공급제는 ‘주류’다.

2000년대 개막한 ‘비정규직 전성시대’에 연공급제와 기업별 노조는 비정규직이 범접하지 못할 성채를 쌓아 올리는 결과로 내달렸다. 지금은 연공급제가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은 아니지만 문제를 가속화한 주범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직무급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직무급제는 같은 가치의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원칙이다. 기관의 규모, 일한 기간보다 하는 일의 난이도에 주목한 것으로, 같은 일을 하는 동안 임금 격차를 좁게 유지하는 게 뼈대다.

직장 중심 대규모 공채와 순환근무
직무중심 채용 정착한 유럽과 문화 차이

그렇지만 직무급제가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특히 정부가 도입을 서두르는 공공부문에 직무급제가 어울린다고 진단하기도 어렵다. 채용과 인력운용 방식이 이른바 ‘직무급제 선진국’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승협 대구대 교수(사회학)는 “유럽은 이미 직무중심의 채용시장이 정착한 곳”이라며 “직업이 아닌 직장을 골라 취업하는 우리나라와 직무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대규모 공채로 나이와 학력 유사성이 높은 인재를 뽑아 직무와 상관없이 일을 맡기고, 몇 년에 한 번씩 순환시키는 방식의 채용과 인력구조가 직무급제와는 맞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국내 일부 기관이 도입한 직무급제는 수십 개의 호봉을 단순화하고 호봉 승급분 일부를 직무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하는 유사 직무급제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혹은 공공기관이나 공공기관 자회사 공무직에게 적용한 최저임금 기반 ‘저임금 직무급제’다. 양쪽 모두 양극화를 억제한다는 직무급제 도입 취지와는 다르다.

직무급제 핵심은 공정한 직무평가
정작 정부는 직무분석에 ‘노동계 패싱’

직무급제 결정 방식도 문제다.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것이라 당사자의 합의가 필수다. 이를테면 같은 기관 안에서 동의 없이 회계 분야와 기획 분야 간 임금 격차가 나면 조직 내 갈등만 부추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함께 직무분석을 하고 정보를 폭넓게 공유해 납득 가능한 차이에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직무급제 추진 방식은 이와 다르다. 직무분석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일선 기업·기관이 독자적으로 직무분석을 한다. 별도 용역을 발주하는 방식이다. 예산은 천차만별이어서 기관마다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임금직무포털 ‘임금직무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최근 건설·조선업 직무평가도구를 개발해 탑재하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직무분석에 활용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다. 역시 주무부처가 노동부다. NCS는 각 업무에 필요한 ‘직무’를 쪼개 분석하고, 이를 위한 교육체계를 설계한 제도다. 900여개 직업에 대한 직무분석을 이미 마쳤다. 그러나 NCS를 직무분석에 활용하는 사례도 별로 없다는 평가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직무분석에 NCS 활용도가 낮다”며 “중복비용이 발생하고 NCS 활용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직무분석에 노동계의 참여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경영학)는 “직무분석은 일종의 공정한 저울을 만드는 것으로, 수용성에 직결하는 문제”라며 “노동계의 참여를 담보하지 않으면 공정한 분석도, 높은 수용성도 기대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사용자 입맛대로 직무분석을 할 공산이 크다.

노동계도 기업별 교섭 개선 과제
“성급한 변화 금물, 신중한 논의 필요”

결국 직무급제 도입을 위해서는 노정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노정교섭이 정착한 것도 아니다. 물론 노동계의 리더십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별노조 조직과 교섭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지만 유럽은 단일노총 아래 산별교섭이 정착했다. 박우성 교수는 “국내 산별노조는 대규모 기업 노조를 포괄해 교섭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정교섭에 부정적인 정부 책임도 크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하던 지난해 9월 경영평가 편람의 직무급제 도입 배점을 강화하고, 지금은 현장실사를 하면서 직무급제 도입을 재촉하고 있다. 기관별 합의를 강조하면서 기획재정부나 인사혁신처 등 부처는 ‘교섭’을 마다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직무급제만을 대안으로 놓는 태도도 위험하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장은 “임금체계 개편의 원인이 임금격차 해소라면 저임금 공무직 임금을 대폭 향상하거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방안을 먼저 강구해 볼 수 있다”며 “무조건 임금체계 개편을 해야만 한다는 방향을 정해 놓고 논의하니 실제 현장에서는 저임금이 고착화하는데 위로는 노동계 탓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1기 공공기관위 위원장을 맡아 노정 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직무급제로의 변화는 시대적 요구일 수 있다”면서도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승진과 보상, 직무훈련, 채용선발 등 인력운용과 관리에 대한 전반적 변화가 필요한데 정부가 준비 안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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