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유튜브 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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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과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이중노동시장 구조와 임금격차는 한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아픈 곳이다.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지금껏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 대안으로 직무급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직무급제’는 격차의 원인을 납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답이 될 수 없다. 직무급 형태로 기본급을 설계한다 해도 격차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각종 성과평가 체계와 이에 따른 수당, 교대제나 노동시간 같은 여러 가지 노동조건이 격차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창립 27주년 기념 토론회로 ‘노동조건 표준화’를 꺼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도깨비방망이’만 찾아 헤맨
산별 임금 표준화 전략, 결국 실패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노동조건 표준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과제’ 토론회는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부수기 위한 노조의 치열한 고민이 엿보였다. 박용철 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보고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 박정호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이 발제를 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이창근 민주노총부설 민주노동연구위원 상임연구위원, 황수옥 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최복준 정책국장은 “병상규모가 큰 병원일수록 병원의 순이익은 높았지만 그만큼 임금인상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며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정기실태조사 DB를 분석한 결과 간호직군의 경우 고연차보다는 저연차에서, 또 노동강도가 높은 3교대 근무자에게서 10% 이상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올해 응답자 2만500명 중 48.3%가 연공급을 선호했는데 이런 경향은 3교대 근무자와 신규노조일수록 높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최 정책국장은 “보건의료 분야 특성상 동일직군이 많아 산별 임금체계가 빨리 형성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난관에 봉착했다”며 “보상에 대한 기대 차이는 병원 규모나 특성보다는 3교대 같은 노동강도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금뿐 아니라 인력과 단협 수준에서 큰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현 의료제도하에서는 각 병원 특성·규모별로 분배 과정이 달라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체계로 전환한 이후 금속노조는 끊임없이 산별 임금체계를 만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산별 최저임금을 만드는 것 외에는 대부분 실패했다.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부장은 이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에 비교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기 침대에 나그네를 눕힌 뒤 침대보다 몸이 길면 잘라서 죽이고, 몸이 짧으면 늘려서 죽였다.

오 부장은 금속노조가 산별 임금체계라는 침대에 사업장마다 각기 다른 임금체계를 맞추려 하다 보니 현실과 유리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천태만상인 사업장 임금체계 속에서 산별 임금체계라는 도깨비방망이만 찾다가 결국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금속노조가 지금까지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정책을 설계하면서 기본급 격차는 어느 정도 해소된 반면 기본급 외 영역에서 격차가 확대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며 “특히 주 40시간제, 주간연속 2교대제, 주 52시간 상한제 등 노동시간단축 정책에 따라 임금보전 방식이 상이하면서 격차가 더 커졌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가 새로 마련한 임금정책 로드맵은 임금체계가 아니라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요인’ 표준화에서 시작한다. 무엇이 표준화의 대상이 되는지 기본임금 기준을 우선 마련하고 제도로 통합해 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격차 못 좁혀
산별교섭·단협 효력확장 필요”

반면 올해로 설립 10년차에 접어든 학교비정규직노조는 노동조건의 표준화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던 노동조건을 지역(교육청)별로 통일하고 이제는 전국적인 표준화로 나아가고 있다. 비결은 단체교섭이다. 법원 판결을 통해 교육공무직의 사용자를 교육감으로 확정하고 단체교섭에서 노동조건을 결정하면서 지역별로 통일된 임금협약이 만들어졌다.

이날 토론자로 참가한 전문가들은 “노동시장 정책으로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없다”며 “집단노사관계 규율, 초기업단위 교섭이나 단협 적용률 확대가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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