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지난해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때만 해도 이렇게 길고 깊게 우리 삶에 생채기를 낼 것이라 생각한 이는 드물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하늘길을 막았고 개인이나 국가나 각자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이동하고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 없이 바이러스가 침투했다. 여행업이나 숙박업부터 피해가 속출하더니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지침이 길어지면서 경계에 선 이들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파견·용역업체 소속 비정규 노동자들은 소리 없이 잘려 나갔다. 프리랜서·특수고용직과 같은 비임금 근로자는 고용유지지원금과 실업급여 같은 사회안전망에서도 제외됐다. 지난해 취업자는 외환위기 여파가 극심하던 1998년(127만6천명 감소) 이후 최대 폭(21만8천명)으로 감소했다. 자영업자 폐업도 줄 잇고 있다.

정부는 불을 끄느라 분주하다. 진전은 있다. 전례 없던 정책 논의가 가속화했다. 정부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 도입 계획을 밝혔다. 코로나19 3차 대행으로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보편·선별 논란도 지속 재생산하고 있다.

정부 노력이 성공할지는 불분명하다. 양극화는 위기 때마다 심해졌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양극화는 벌써 조짐이 나타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지니계수와 빈곤지수가 각각 0.009포인트, 6.4%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올해 코로나19를 극복해 경기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상위계층은 소득이 늘고 하위계층은 소득이 감소하는 K자 회복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노사정을 비롯한 우리 사회 주체들은 깊어진 양극화 시대를 대비해, 혹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매일노동뉴스>가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었다. 기획 좌담회에는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과 남재욱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미래인재연구본부 사회정책지원센터 부연구위원이 참여했다. 제정남 매일노동뉴스 노동정책팀장이 사회를 봤다. 좌담회는 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공항철도 서울역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중노동시장이 피해 키워”

사회 : 코로나19가 노동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남재욱 : 방역 논란이 많았지만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를 보면 비교적 통제가 잘 됐다고 본다. 고용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고용유지지원금 등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만들었던 사회보장 제도는 꽤 잘 작동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만들어진 심각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위에서 위기가 발생하니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2등 시민처럼 기존 고용체제 밖에 있던 사람에 대한 정책 수단이 없는 것이다.

김종진 : 고용유지지원금은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 준다. 파견업이나 협력업체는 정부가 지원하는 업종에 해당하지 못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일부 개선되기도 했지만 부분 실업급여나 상병수당 등에 대한 논의는 한 발자국도 가지 못했다.

부분 실업급여는 두 개 이상의 일자리에서 일하다가 하나의 일자리를 잃는 경우에도 급여를 지급할 뿐만 아니라 급여를 받는 중에 일시적으로 취업할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급여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미룬 재정확대”

사회 : 정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남재욱 : 재난 시기 정부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재정을 투입하는 일이다. 또 하나는 코로나 위기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긴급한 지원을 확대한 것 외에는 재정규모도 제도화도 부족했다. 다른 선진국들이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를 코로나19 직접지원으로 사용한 데 비해 우리는 3% 정도만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재정건전성 이야기만 반복한다.

김종진 : 코로나19가 발병한 뒤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까지 낸 보고서들에서 보면 적극적인 재정 확장을 꾸준히 이야기했다. 재정건전성이 중요한지, 민생 생존이 중요한지 묻는다면 물론 후자가 중요하다. 국채를 내서라도, 뭘 해서라도 긁어 모으면 돈은 있다.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30조가량을 적립해 놓고 쓰고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 같은 기관도 고유목적사업준비금이 있다.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운 스포츠·예술인 혹은 장애인 노동자를 위해 이 중 일부라도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2025년까지 전 국민 고용보험 완료? 정부 의지 있나”

남재욱 : 그나마 제도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전 국민 고용보험이다. 다만 대상자 확대 못지 않게 중요한 소득 중심으로의 전환은 다음 정부 과제로 미뤄졌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실현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인프라 구축을 위한 어려움은 있겠지만, 소득 중심 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화의 일부만이라도 현 정부에서 하려는 의지를 보였어야 하지 않나 싶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현재 산재보험 가입 대상 특수고용직(1단계)-배달 종사자 중심의 플랫폼 노동자(2단계)-기타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자영업자’ 순으로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기로 하는 안이 담겼다. 하지만 1·2단계에 포함되지 않는 플랫폼 노동자·특수고용직 고용보험 적용은 2022년 7월로, 자영업자는 2025년으로 계획했다. 새로운 정부가 이를 실행할지는 불투명하다.

김종진 : 전 국민 고용보험이 2025년까지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소득 파악이 당장 어렵다고 하지만 국세청에 국 단위 하나를 마련하고 IT기술력이 합쳐진다면 1년 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내) 타임라인을 세울 수 있다고 본다.

“케이(K)자 양극화 대비 사회안전망 확대 필요”

사회 : 위기 대응을 위한 총탄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재정을 바라보는 보수적인 시각 탓인지. 복지 전달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인지 궁금하다.

남재욱 : 재정건전성을 희생하더라도 이런 시기에는 돈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든다. 복지 전달체계가 미비한 것은 사실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게 된 중요한 원인이다. 미비한 복지 전달체계를 보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이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월 단위 소득 파악이 가능하다면 비임금 근로자를 포함한 사회제도를 만들 수 있다. 전 국민에게 재난소득을 지원하지 않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정확히 충분히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김종진 : 경제학 전공은 아니지만 재정적으로 나쁘지만은 않은 시기였다고 본다. 문제는 지난해부터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상반기까지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지면 전 세계적으로 재정확대 정책이 계속돼 인플레이션이 생기고, 금리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람이 돈을 당겨 쓰다가 갚을 때 이자 부담이 가중돼 양극화 문제가 심화할 수 있다. 특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주식투자나 부동산투자를 하는 이들 중 내년 정도에는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케이(K)자 양극화 상황을 버텨 낼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총리실에서 이번 기회에 제도적 TF를 마련해 향후 경험할 수 있는 바이러스에 대비해 현재 드러난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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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집중된 필수노동자, 소외된 취약계층”

사회 : 코로나19로 필수노동자가 주목을 받았다.

남재욱 :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좀 더 사회적 역할이 부각되는 노동이 있고,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필수노동자 외 사람들은?’이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필수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회문제의 구조적인 부분을 보지 못할 수 있다. 필수노동자라는 표현보다 재난이 우리 사회에 주는 숙제가 무엇인지 봐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 사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드러냈다. 비임금 노동자, 자영업자, 그림자노동 취급을 받았던 돌봄 노동자 문제,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점 등은 전문가들이 모두 알고 있었지만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논의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어난 것은 긍정적이다.

김종진 : 필수노동자가 과도하게 논의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스웨덴·프랑스보다 미국·영국·캐나다에서 주로 필수노동자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코로나19가 확산하는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그들 나라에 노동자 보호나 사회적 안전망이 열악해서다. 필수노동자 중심으로만 이야기하면 필수노동자가 누구인지, 몇 명인지,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지와 같이 대상 직업군을 정하게 된다. 택배노동자처럼 과로사로 쓰러지는 업종 혹은 노동단체가 있어서 목소리를 내는 집단만 지정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남재욱 : 소수이면서 가장 취약한 집단은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줬지만, 그 와중에 못 받은 사람이 있다. 주민등록상 문제가 있는 홈리스들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재난지원금에 관한 논의는 보편과 선별만을 오간다. 코로나19로 쉼터가 사라지고 밥을 주지 못하게 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는 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이라는 상황에서 잊힌 사람들을 잊는다면 언제 우리 사회가 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지정 필수노동자의 한계”

김종진 :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을 보면 직업군이 택배나 콜센터처럼 특정돼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필수노동자를 지정하게 돼 있다. 대상자를 지정하는 방식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대상은 코로나19로 인해 수요 증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거나 열악한 업무 환경에 시달리는 업종이 많았다. 보건·의료, 돌봄, 운송(택배·배송), 환경미화, 콜센터 등이다. 송옥주 의원이 발의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필수업무종사자 지원위원회가 필수업무 및 필수업무종사자 범위를 지정해 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근로형태종사자를 지정하듯, 지정방식은 곧 배제를 낳는다는 한계가 있다.

사회 : 택배노동자와 이륜차 배달노동자가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종진 : 코로나19로 업무가 늘어나는 배달이나 택배 내용은 잘 알려졌지만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을 상실해 생계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집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집합이 금지되니 개인사업자 신분의 CS강사와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통역가 등은 규모가 적거나 조직되지 않아 잘 언급되지 않는다.

남재욱 : 정치권에 목소리가 닿는 사람은 그래도 무언가 있는 사람이다. 노조, 하다못해 맘카페 같은 커뮤니티가 있는 사람이다. 정말 구석에 있는 사람들의 비명은 정치권에 닿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정치권은 나서지 않는다. 코로나19 초기에는 물론 우왕좌왕할 수 있다. 하지만 반년 이상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역 이외 측면에서 정부 대응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쏘아 올린 공”

사회 :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했다. 이 정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남재욱 : 전 국민 재난지원금 논의가 가장 많이 나온 나라는 미국·일본·한국이다. 누가 얼마큼 소득이 줄었는지 파악이 안 되는, 복지 전달체계가 잘 안 돼 있는 나라들이다. 한 토론회에서 다른 토론자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깜깜한 방 안에 있는 10명 중 5명이 굶고 있는데, 너무 깜깜해서 누가 굶는지 알 수 없으니 10명 모두에게 빵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비유하시더라.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가는 비유였다. 그게 우리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빵 하나씩 주니까 좋지 않냐’가 아니라, 전등을 달고 불을 켜는 일이다. 모두가 똑같이 100원씩(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나눠 갖는 것은 선물이다. 연대라는 체험은 진짜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할 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김종진 : 코로나19 시기 경기부양을 위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한두 번이면 족하다. 모든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은 반대한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만 15세가 되면’, 혹은 ‘만 19세가 되면’ 이런 식으로 합의된 출발점에서 공정성을 위해 일정 금액을 주는 논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 코로나19가 복지담론을 넓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종진 : 고용보험을 자영업자에게 적용하는 일은 연구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못했다. 코로나19가 준 예상치 못한 진전이다.

남재욱 : 전 국민 고용보험이 2020년에 이슈가 될 것이라고는 그해 1월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위기가 오면서 ‘정책의 창’이 열린 것 같다.

김종진 :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존 복지제도의 미흡한 부분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는 무엇이 낫다, 식의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재욱 : 기본소득을 우리가 얼마를 줄 수 있을까. 재원이 무한정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꼭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지 비토하는지를 떠나서 누가 지원금이 필요할지를 국가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사회적인 연대의식이 높아지거나, 정부에 대한 효능감이 높아졌다거나 하지는 않은 듯하다. 기본소득을 통해 연대가 형성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진짜 위기에 빠진 사람을 우리가 확실히 구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그 시스템을 위해 내가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경험을 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와 비경제활동인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모호하니 다 주자 이런 논리가 아니라 모호한 부분을 잘 찾아야 한다. 복지는 그냥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와 권리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아동수당과 노인수당을 지급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동을 키우는 일은 경제력과 무관하게 돈이 들어가는 일인 데다 사회적 가치가 큰 일이다.

김종진 : 보건복지부가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2022년 한다고 했다. 현 정부에서는 안 하겠다는 의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하게 봐야 할 문제다. 유급병가는 사실 대기업과 유노조 사업장에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초기에 조금 부각되다가 논의가 쏙 들어갔다. 양대 노총이 현 정부 안에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남재욱 : 서울시에서는 이미 상병수당과 유사한 제도(서울형 유급병가 지원 제도)를 수행하고 있고, 건강보험에 근거가 될 만한 법조문도 있다. 실행이 문제인 상황이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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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이후 적자생존 가속화” 우려

사회 : 코로나19로 미국과 같은 불평등시스템은 재난을 극복하는 데 알맞지 않다는 것을 전 국민이 경험한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이 경험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

김종진 :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우리는 금방 잊는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보면 오히려 적자생존의 경쟁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본다. 2년 동안 사회적 공동체가 긍정적으로 가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밑바탕에는 내가 일자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혹은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사회적 보수화 경향도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제도화된 규칙을 만드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남재욱 :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 시스템과 정부의 유능함이 작용해 진짜 위기상황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연대체험이다. 연대감이 생기기는커녕 있던 연대감이 깨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위기라는 공포가 각자도생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종진 : 택배기사 과로사가 문제 되니 사람들이 늦어도 된다며 문 앞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음료를 놓아둔다. 소시민적 자기만족적 행위다. 더 큰 연대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더 이상 안 된다, 법 만들자, 택배 요금 100원 오르면 나는 50원 부담할 수 있다, 이렇게 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택배기사 처우개선에 동의하지만,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면 의견이 갈린다. 자기 만족적 행위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사회 : 앞으로 노사정을 비롯한 우리 사회 주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김종진 : 양대 노총이 각각 10억원씩 내 사회 전환 프로젝트을 위한 제3의 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노조간부·청년들이 모여 그중 3분의 1은 연구를 한다든가, 나머지는 새로운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범 프로젝트를 한다든가 하는 것이다. 100만 조합원이 1천원씩만 내도 10억원을 모을 수 있다. 노동조합도 비판만 하는 야당의 역할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남재욱 : 정부가 코로나 이후 사회에 대해 내놓은 청사진은 한국판 뉴딜이다. 디지털뉴딜이 됐든 그린뉴딜이 됐든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람인데, 사람에 대한 고민은 기존에 하고 있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한국형 실업부조)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동시간단축, 일자리의 질 개선, 평생직업역량개발체계 등 굉장히 중요한 이슈들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한국판 뉴딜에는 이런 사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김종진 : 과로를 막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동시간단축도 필요하다고 본다. 10~20대 청년들도 정규직을 원하겠지만 주 50시간 이상 일하는 일자리를 선호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새로운 노동시간·일자리 화두를 던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처럼 법정노동시간은 30시간에서 32시간 전후로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라이트 풀타임(Light-full time, 24~32시간 노동) 일자리로 가야 한다. 여지껏 장시간 노동체제가 유지돼 온 것은 임금이 낮아서인데, 이전소득을 높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제도 소득을 높이는 등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

남재욱 : 청년들이 프리랜서를 선호한다고들 하는데, 프리랜서가 좋아서가 아니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문화에서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자본과 노동의 축적을 통한) 요소 투입형 성장이 끝난 뒤 창의력이 강조되는 세상이다. 민주적인 직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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