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아들을 산업재해로 잃은 부모들이 한 달 꼬박 곡기를 끊고 국회 앞에서 시린 겨울을 보낸 끝에 법안은 겨우 국회 문턱을 넘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제 법이 만들어졌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법이 정말 사람을 살리는 법이 되려면 법원에서 법대로 제대로 판결하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비록 구멍이 숭숭 난 성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지만 산업재해는 작업자 개인의 실수로 빚어진 ‘사고’가 아니라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기업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에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를 살리려면 검찰과 법원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산업재해 사고를 기업 범죄로 다뤄야 한다.

사람 죽어도 벌금 500만원, 솜방망이 처벌 달라질까

10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11일 오후 열리는 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을 의결할 예정이다. 그동안 법원은 사망시 징역 7년까지 처벌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했다. 고용노동부 연구용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사이 징역형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은 사업주나 안전보건책임자는 2.93%(86명)에 불과하다. 이 중 60%는 1년 미만 형을 받았다. 벌금형의 경우 자연인은 평균 420만원, 법인은 평균 448만원에 그쳤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해도 처벌 수준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경향신문이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한 9건에서 벌금 평균액은 자연인 340만원, 법인 525만원으로 오히려 처벌이 가벼워진 것으로 나타난다. 법이 강화돼도 법원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의미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자연인)는 징역 1년 이상 하한형을 못 박았지만 법인에 대해서는 하한을 없애는 쪽으로 후퇴했다. 1년 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도 검찰과 법원 인식에 변화가 없으면 이런 상황은 또 되풀이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과실치사와 구별되는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 범죄’로 바꾸고 적용 대상도 도급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11일 회의에서는 권고 형량범위,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이 얼마나 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사고예방 소홀, 과실 아닌 고의”

권영국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기업에서 중대재해를 일으켜도 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 같은 과실범으로 보고 양형기준도 과실범 수준에 맞추었지만 앞으로는 과실범이 아니라 일종의 고의범, 기업 차원의 조직범죄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높은 장소에서 일하게 하면서 추락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일을 시키면서 질식사고를 예방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면, 예방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 위반으로 보고 처벌해야 한다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이자 취지”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런 법 취지가 실현되려면 검찰과 법원에서도 산재사고를 다루는 인식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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