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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노동안전 패러다임 바꿔야 줄인다] 21대 국회는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사고가 아니라 범죄다”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목소리 거세져
▲ 그래픽 김혜진 기자

2017년 5월1일. 노동절이지만 1천623명의 노동자가 출근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7안벽 해양플랜트 현장은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노르웨이 부근 북해에 설치될 원유시설인 마틴 링게(Martin Linge) 프로젝트 납기일이 불과 43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공정률 93%로 빠듯한 공기 탓에 동시에 움직인 적 없던 800톤급 골리앗크레인과 32톤급 지브형크레인이 한꺼번에 작업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 2시50분께 마틴 링게 프로젝트 모듈 건조현장에서 ‘우지끈’ ‘끼익’ ‘쿵’ 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를 운반하려고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던 골리앗크레인에 쓰레기함을 운반하던 지브형크레인이 부딪치며 낸 소리였다. 지브형크레인 운전자가 충돌을 느꼈을 때 곧바로 비상경보를 울렸지만 800톤 골리앗크레인에 부딪친 32톤 크레인의 지브는 엿가락처럼 휘어 그대로 떨어졌다. 딱 1분 사이 벌어진 일이다.

22톤이 넘는 크레인 지브가 77.5미터를 떨어져 덮친 곳은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간이화장실이었다. 주변에 있던 노동자들이 피할 틈 없이 그대로 지브에 깔렸다. 혈흔이 낭자했고 안전모가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25명이 심하게 다쳤다. 노동자 500여명이 사고를 목격했다. 목격자 중 7명은 큰 충격으로 오랫동안 트라우마의 고통에 시달렸다.

사고 당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는 146개 하청업체가 있었는데, 7안벽 마틴 링게 현장에는 15개 하청업체 노동자 1천464명이 참여했다. 31명의 사상자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여러 대의 크레인을 동시에 작업한 것이 원인이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삼성중공업 조선소장과 하청업체 대표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1심과 2심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의 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크레인 중첩작업시 별도의 신호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 규정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원청 관리자·하청 대표를 공동정범으로 처벌하지만 정작 이 모든 일이 이뤄진 삼성중공업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1심 법원은 골리앗 크레인 신호수와 신호·조작 작업자만 처벌했다. 유아람 창원지법 통원지원 형사2단독 부장판사는 “신호·조작하는 하청노동자들이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 판시했다.

솜방망이 처벌, 반복되는 참사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올해도 노동절을 앞두고 산업재해 참사가 일어났다. 4월29일 경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사고 원인은 무리한 공기 단축이었다. 경찰은 직접 발화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한 지하 2층 냉동실 냉매 배관을 연결하는 용접작업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한 병행작업과 공정 전반의 안전관리 수칙 미준수로 인명피해가 컸다”고 설명했다. 화재 당일 평상시보다 2배 가까운 인원이 투입돼 지하 2층에서 옥상까지 동시에 많은 종류의 작업이 병행됐다. 하지만 현장 안전장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화재경보장치도 화재감시자도 없었다. 지하 2층 비상구 문은 굳게 닫혀 노동자의 대피로조차 없었다. 발주처 차원의 공기 단축 지시가 있다고 의심되지만 이런 사실이 밝혀져도 처벌받지 않는다.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산재로 노동자가 해마다 2천명 넘게 숨져도 솜방망이 처벌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법원은 산재가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기업 범죄가 아니 작업자의 실수 혹은 안전관리 책임자나 공정 책임자의 부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 시즌2도 본격화했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원청의 책임을 높이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했는데도 중대재해가 줄지 않자 안전에 대한 비용을 투자하지 않아 위험을 초래하는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먼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발의한 곳은 정의당이다. 강은미 의원은 정의당의 1호 법안으로 6월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중대재해가 노동자 실수나 부주의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위험을 제대로 예방하고 관리하지 않아 발생하는 ‘기업범죄’라는 고 노회찬 의원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계승했다.

노동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민주노총은 산재·재난참사 피해자, 노동·시민·사회단체 133곳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지난달 초 중대재해기업처벌 법률안을 공개했다.

정의당안과 운동본부안은 큰 줄기는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두 법안은 사업주와 실질적 경영책임자에 직접적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포괄적 위험방지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책임을 지도록 했다. 중대재해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하청노동자로 확대하고, 원청이 처벌 대상에 포함되도록 책임주체를 명확히 했다. 감독·인허가권한과 관련된 주의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한 공무원도 처벌 대상이다. 형사처벌만으로는 산재예방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넣었다. 영업허가를 취소하는 강도 높은 조치도 가능하다.

적용범위는 산재뿐만 아니라 시민재해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가습기 살균제와 세월호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목적이다.

중대재해 기업·사업주 처벌 강화 한목소리
입법 방식·적용범위는 달라


다른 점도 있다. 운동본부의 법안이 좀 더 엄격한 편이다. 정의당안에는 없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운동본부는 1명 이상 사망하거나 3개월 이상 부상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도 중대재해로 처벌 가능하도록 했다. 건설·조선업에서 발주자를 처벌하는 근거조항을 포함시켰다. 또 사업장에서 동일한 유형의 산재사고가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동본부가 개정안에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신설했다는 점은 가장 큰 차이다. 해당 사고 이전 5년간 법 위반 사실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위험방지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반복된 사고에 고의성·과실이 없다는 것을 사용자가 입증해야 한다.

입법 방식도 다르다. 정의당안은 강은미 의원이 발의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운동본부는 국민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청원하는 ‘국민 직접 입법발의’ 전략을 택했다. 2005년 시작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운동 이후 19대 국회 입법청원운동, 20대 국회 입법발의가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심의조차 없이 폐기되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운동본부는 법안을 준비하는 것부터 대중운동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의당 안과 병합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입법안은 결이 다르다. 한국노총은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기업대표를 엄벌해 산재예방의 실질적 효과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법안의 적용 범위와 처벌 대상에서 운동본부의 법안과는 차이가 있다. 처벌 대상 기업에서 개인사업장은 제외시켰다. 법을 적용했을 때 개인 파산 우려가 큰 영세 사업장을 뺀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기업의 범죄능력을 인정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법 조항에 “자연인이 아닌 법인도 범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한국노총은 더불어민주당 노동존중실천의원단을 통한 입법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법인 과징금 신설하고
다중인명 사상사고 형량 합산 특례법 준비하는 정부


정부도 노동자 산재사망 범죄에 대한 법원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데 동의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6월3일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사망·사고는 개인의 주의 의무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달리 안전관리체계 미비 같은 ‘기업 범죄’ 성격이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양형 기준을 논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사업주가 형 확정 뒤에도 똑같이 법을 위반하면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법인에 대한 벌금 상한액도 기존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올렸다. 법원이 이런 점을 고려해 양형 기준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을 정부가 한 것이다.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양형기준을 독립범죄군으로 편제하는 것을 비롯해 설정 범위, 유형 분류, 형량 범위, 양형 인자, 집행유예 기준 등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내년 1월 이를 반영한 징역형 양형기준안을 공개하고 두 달간 관계기관 의견조회를 거쳐, 3월 새 양형기준을 결정한다. 다만 벌금형 양형기준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양형위원회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추후에 논의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산재가 사고가 아니라 기업범죄라는 인식 전환에 법원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산재참사 이후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법인 과징금 조항 신설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임영미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생명안전을 위한 기업책임강화 제도 도입 토론회에서 “지금은 노동자가 사망해도 벌금형은 40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법을 개정해 벌금 상한액을 10억원까지 올렸지만 양형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법원이 그만큼 부과할 것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과태료나 벌금형 수준 이상의 과징금 범위를 마련해 올해 정기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지 않아 산재사고가 재발한다면 그보다 더 무거운 경제부담을 지도록 법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법무부는 세월호 참사 대책으로 추진했다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을 올해 정부입법으로 재추진한다. 여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범죄는 형량을 합산해 가중 처벌하는 특례법이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기업의 대표이사 이사회 보고의무’ ‘안전보건 위험요인에 대한 경영책임자 보고’ 조항을 신설하면 법무부의 특례법과 연동해 경영책임자도 엄하게 처벌할 것으로 내다본다.

쟁점은 ‘안전할 권리’ 위협하는 기업 범죄, 누가 책임지는가

노동자 죽음을 반복해서 일으키는 기업과 경영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방식은 여전히 논란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반대하는 쪽은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데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형법 근간을 흔드는 꼴이고, 헌법에 위배하는 과잉입법이라고 주장한다. 안전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법인 이사와 발주자, 도급인이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전승태 한국경총 산업안전팀장은 “사업주가 고의적으로 사망을 일으키려 법을 위반한 게 아닌데도 고의범으로 보고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논리는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경중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양형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재계 입장이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쪽은 “중대재해는 기업의 구조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안전을 도외시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영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명칭 그대로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기업은 범죄능력이 없고, 경영책임자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형사처벌이 쉽지 않다. 물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더라도 산재는 발생하겠지만, 적어도 산재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시스템이 만든 범죄라는,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면 예방 가능한 범죄라는 인식은 확산될 수 있다는 논리다.

21대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난망하다. 운동본부가 6월까지 21대 국회의원에 법 제정 찬반 입장을 물은 결과 36명이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의당(6명), 열린민주당(3명), 기본소득당(1명)은 전원 찬성했다.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에서 동의한 의원은 26명에 그친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재에 대한 기업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면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해서는 “법리적 문제 등으로 검토 중”이라는 식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 적용 대상이 운동본부안보다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한국노총의 입법안조차 선뜻 발의하겠다고 나서는 국회의원이 없다.

7월1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축이 돼 국회 생명안전포럼이 발족했다.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27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이 실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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