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스마트폰 앱의 GPS를 기반으로 일감을 잡고 페이팔로 보수를 받은 크라우드 노동자(crowd worker)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세계 최초 판결이 독일 연방노동법원에서 나왔다. 크라우드소싱은 대중(crowd)과 아웃소싱을 합친 말로, 일반 대중에게 기업 내부 고용인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업무방식이다.

앱으로 일감 잡고 페이팔로 보수받아

소송을 낸 A씨는 기업들이 크라우드소싱업체에 위탁한 상품 진열이 잘 돼 있는지 점검하는 일을 했다. 주로 상점이나 주유소에서 사진을 찍어 전송하거나 버스정류장 광고포스터가 잘 부착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A씨는 스마트폰 앱에서 일감을 받았는데 A씨의 GPS를 기반으로 50킬로미터 반경에 일감이 뜬다. A씨가 수락하면 2시간 이내 업무를 수행하고 보수는 페이팔로 받았다. 1주일에 20시간씩 일했고, 월 평균 1천750유로를 벌었다. A씨가 1년 동안 처리한 위탁업무는 2천978건이다.

그런데 업체와 A씨 사이에 진열대 점검을 둘러싼 다툼이 생겼다. 업체가 A씨에게 더 이상 업무를 주지 않겠다고 하자, A씨는 자신이 해당 업체의 정규직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지방노동법원과 뮌헨의 주노동법원은 회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연방노동법원은 독일 민법의 “근로관계는 취업한 자가 지시에 구속되고,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에 인격적으로 종속돼 업무를 수행한다(611조a)”는 조항에 근거해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A씨가 업무를 수락해야 할 계약상 의무는 없지만 전형적인 노동자의 방식으로 지시권에 구속돼 타인에 의해 결정된 노동을 인적 종속 아래 했다는 것이다. 업무 건별로 계약하지만 평가시스템을 통해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면 더 많은 업무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독일 정부는 이번 연방노동법원 판결이 나오기 사흘 전인 11월27일 ‘플랫폼경제에서 공정한 노동’ 정책을 발표했다. 플랫폼경제에서 활동하는 1인 자영업자에게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상 보호를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법정 연금보험에 편입하고 사업주에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또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관계 존재 여부에 대한 정황(간접증거)를 제시할 경우 사용자가 근로관계 입증책임을 진다.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계약해지 예고기간 법제화와 모성보호·휴가·질병수당 등도 추진된다. 플랫폼 계약조건을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정한다는 점을 고려해 독일 법무부와 노동사회부가 공동으로 계약의 약관규제를 검토해 효력 여부를 판단한다.

“인적 종속성 고정불변 기준 아니다”

15일 오전 한국노총과 더불어민주당·정의당이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런 판결 내용을 소개한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크라우드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세계 최초 판결로 화제가 되고 있다”며 “노동자성 판단기준은 시대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적 종속성이라는 개념을 고정불변의 기준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조만간 플랫폼 노동자 보호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강검윤 고용노동부 고용차별개선과장은 “플랫폼 노동자와 관련한 대책을 곧 내놓을 예정”이라며 “이번 정책이 일시적인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플랫폼 노동 정책을 추진하는 전환점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