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가 지난해 11월3일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90주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양질의 일자리 확대를 요구했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최하는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준비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주지역 S특성화고 이아무개(18)군이 학교생활 내내 학교폭력에 시달렸다는 유가족과 동료 학생들의 증언이 나왔다. 지난해 기능경기대회 입상 후에는 담당교사에게 기능반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능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학교들과 취업을 위해 극단의 경쟁 속으로 내몰린 특성화고 학생들의 처지가 이군의 죽음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는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군 유가족과 학생들의 제보를 토대로 S특성화고 학교폭력 실태와 기능반 운영의 문제점을 폭로했다.

공단 주최 기능경기대회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국가고시와 다를 바 없다. 전국 대회에서 은메달 이상을 받으면 대기업 등에 특별채용된다. 대회를 앞두고 적지 않은 학교는 대회 준비 학생의 학사일정을 조정하는 등 사실상 편의를 제공한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학교 동료나 선후배 간 갈등도 빈번하다. 이군이 그랬다. 증언에 따르면 이군은 1~2학년 당시 선배들에게 언어폭력과 폭력 같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께부터 수차례 담당교사에게 기능반 탈퇴를 요구했다. 권리연합회 관계자는 “일상화된 폭력과 기능경기대회 같은 경쟁에서 밀리면 인생에서 낙오된다는 압박감이 이군을 오랜 기간 억누른 것 같다”며 “기능경기대회와 기능반이라는 교육시스템에 질려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군은 대회에 출전할 같은 조 학생과 갈등이 깊었는데, 이 역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군 유가족은 학교측 관계자가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에 로비해야 한다며 500만원가량을 받아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군의 같은 학교 친구 A군은 “기능반에 들어간 후 폭력과 동기 간 갈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았고 나가기를 희망했다”며 “2년 넘게 힘들어했다”고 증언했다. 권리연합회와 유가족은 이군 죽음에 대한 교육청 주관의 진상조사와 기능반 운영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 정부에는 기능경기대회 준비·운영에 대한 특별조사를 요구했다.

S특성화고 관계자는 “실력이 좋은 학생이기 때문에 기능반 탈퇴를 말했을 때 다독이면서 연습을 계속 지원해 주는 것이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경찰조사를 통해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기를 희망하고, 진위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죽음의 원인을 알아야 학교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며 “경찰과 교육청의 진상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군은 지난 8일 오후 학교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합숙생활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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