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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살인기업 특별상 우정사업본부 그 후] 계속되는 초장시간 노동, 집배원이 죽고 있다지난해 현직 사망자 39명 … 과로사·자살만 19명
   
▲ 사진 정기훈 기자

<매일노동뉴스>는 양대 노총,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해마다 살인기업을 선정한다. 전년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을 선정하는데, 지난해 우정사업본부가 특별상을 받았다. 8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숨지거나 자살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 살인적인 초장시간 노동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까. 매일노동뉴스가 4·28 세계 산재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최악의 살인기업' 우정사업본부의 산업재해 실태를 살펴봤다.<편집자>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39명이 사망했다. 자살자가 9명, 심정지 등 과로사로 볼 수 있는 뇌심혈관질환 사망자가 10명이다. 우정사업본부 소속 직원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다. 위탁집배원 등 비정규직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불어난다. 실제로 지난해 1월31일 파주우체국에서 위탁택배원 안아무개(사망 당시 54세)씨가 배달 중 쓰러져 심정지로 숨졌지만 명단에는 빠져 있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세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우정노조가 확인한 사례가 그렇다. 초장시간에 내몰린 우정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죽었다

22일 매일노동뉴스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서 입수한 ‘2017년 우체국 현직 직원 사망자 명단’에 따르면 지난해 숨진 우정노동자는 39명이다. 사인을 보면 뇌심혈관계질환과 암이 각각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자살은 9명, 교통사고는 8명, 간경화 등 질병 사망자는 2명이다. 시기별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에 8명이 사망했다. 7월과 3월·4월·1월에 각각 4명씩 목숨을 잃었다. 특히 4월 말에는 23·25·26·29일 우정노동자가 잇따라 숨졌다. 같은해 5월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충남 아산시 아산신창우체국 소속 곽현구(47)씨는 지난해 4월25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날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깨어나지 못했다. 사고 당일 아내는 남편이 평소처럼 새벽에 출근한 줄 알았다. 아침 해가 뜨고 나서 곽씨 침실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제야 아내는 쓰러진 남편을 발견하고 피눈물을 쏟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밝힌 곽씨 사망원인은 급성 심근경색. 과로사로 추정된다. 실제로 숨지기 직전 곽씨의 4주간 평균 출근시간은 새벽 6시37분이었다. 남들이 쉬는 토요일에도 한 달에 두 번 출근했다. 사망 전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2시간20분이었다. 주당 평균 62시간50분을 일했다.

곽씨가 쉬지 않고 일한 이유는 업무량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직전 하루 평균 물류량(982통)보다 훨씬 많은 1천291통의 우편물을 배달했다. 월말을 앞두고 각종 고지서가 넘쳤고, 대통령선거 공보물까지 발송해야 했다.

곽씨가 숨지기 이틀 전에는 부산우체국 윤아무개씨가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곽씨가 죽은 다음날에는 유성우체국에서 일하는 신아무개씨가 근무 중 심정지로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4월29일에는 이아무개씨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9월 부산·경남지역 집배원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했던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에 의하면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는 집배원들은 성인 남성(일일 기준)보다 2.5배 많은 열량을 소모한다. 작업 내내 심장박동수가 평균 105회에 이를 정도다. 조선소 용접공(102회)이나 주물공장 용해로 작업자(94회)의 평균 심박수를 웃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다는 뜻이다.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해도 해도 끝내지 못한다는 좌절감”

우정사업본부 2017년 사망자 명단에서 충격적인 사실은 자살이 9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숨진 우정노동자 4명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해뿐만 아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만 34명이다.

이병훈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집배원들은 아무리 일을 빨리 해도 다음 일이 남았다는 사실에 지쳐 간다”며 “일을 해도, 해도 끝내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자살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집배원 출근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8시다. 그러나 사망한 곽현구씨처럼 새벽 6시쯤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미리 출근해 배송할 우편물이나 소포를 정리해 놓지 않으면 당일 배달물량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6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집배원 한 명이 하루에 돌리는 우편물량은 평균 1천32.3통이다. 연가나 병가를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없는 구조다. 동료 한 명이 쉬면 그 물량을 팀원들이 나눠서 해결해야 한다.

지난해 7월1일부터 10일까지 한국노동연구원이 전국 집배원 2천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집배원들은 하루 평균 10.9시간, 주당 55.2시간, 월 239.1시간 일하는 나타났다. 연가사용일은 평균 3.4일에 그쳤다. 연가를 사용하지 못한 원인은 “동료에 피해 주기 싫어서(41.9%)” 혹은 “업무량이 과중해서(39.3%)”였다.

일반우편 2.1초, 등기 28초
사람 잡는 ‘초단위 집배부하량 시스템’


집배원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은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에서 비롯된다. 집배부하량 시스템은 2004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했다. 집배원 한 명당 적정 배달물량을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세부단위업무 표준시간을 초단위로 설정해 업무시간을 계산한다. 이에 따르면 일반통상 배달은 2.1초, 등기는 28초, 도착안내서 발행은 35.4초다. 여유율은 단 3%다. 김철홍 인천대 교수(산업경영공학)는 지난해 9월 집배부하량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제철·조선처럼 힘든 작업은 30% 이상 여유율을 확보하는 데 반해 집배원 여유율은 3%에 그치는데 산정근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작업자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비인권적 관리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김효 집배노조 정책국장은 “집배부하량 시스템에서 일반우편물 배달은 2.1초인데 여기엔 집배원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우편함까지 이동하는 도보시간은 들어 있지 않다”며 “근본적으로 잘못 설계된 집배부하량 시스템 탓에 집배원들이 초단위로 업무시간을 쪼개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6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실마리 잡힐까

집배원의 잇단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6월 ‘집배원 근로시간단축 대책’을 내놓았다. 같은해 9월5일에는 노사합의를 통해 282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올해 3월부터는 주간 집배원 근무체계를 ‘월~금(통상팀)’과 ‘화~토(소포팀)’로 나누는 방식의 주 5일제를 시범운영 중이다. 집배원 노동시간은 줄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아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인력증원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상시위탁집배원이 정규직이 되면서 그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데, 신규채용 응시자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력부족 문제가 심각한 경인지방우정청의 경우 집배원 정원은 3천749명이지만 현재 근무인력은 3천600여명으로 100명 넘게 부족한 실정이다. 인력이 부족한 우체국별로 모집공고를 수시로 내지만 정원미달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우정노조 관계자는 “과거에는 집배원 채용공고를 내면 정원이 바로 차는 편이었는데, 최근 집배원 과로 문제가 많이 알려져서인지 응시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 5일제 시범운영 역시 지난해까지 실시한 격주 6일제 근무 당시 인력 수준과 ‘토요 집배’를 유지한 채 근무체계만 일부 조정한 것이어서 장시간 노동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우정노조는 "주 5일제 시범운영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충분한 인력충원 없이는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해 집배노조는 “4천500명 정도 증원해야 집배원들이 대한민국 평균 노동시간(연간 2천113시간)을 맞출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6월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이는 ‘집배원 근로조건 개선기획단’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지난해 8월부터 우정사업본부 노사(각 2인)와 정부위원(1인)·전문가위원(6인) 등 11명이 참여해 집배원 작업환경 조사와 노동실태 조사를 마친 기획단은 6월 근로조건과 고용형태 개선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김효 정책국장은 “토요 집배 폐지와 잘못된 집배부하량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인력산출 방식을 없애지 않는 한 집배원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며 “기획단이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내놓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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