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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 농성장을 가다] "반쪽 정규직 선고, 노조 힘을 키울 수밖에요"해고 677일 만에 불법파견 판결받던 날 노동자들 아쉬움 토로
   
▲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이 20일 농성 천막 앞에 서 있다. 지부와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등 11개 노조가 지난달 1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 투쟁사업장 공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기훈 기자

 

   
▲ 민주노총 강원영동지부 동양시멘트지부는 지난해 8월부터 서울 종로구 삼표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양우람 기자
   
▲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등은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복직과 정규직 전환을 촉구했다. 양우람 기자

장장 677일이 걸렸다. 여덟 번의 계절을 길에서 먹고 잤다. 모래와 먼지를 마시며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길에 있는 동안 얼굴이 흙에 파묻혀 일할 때보다 새까매졌다. 협력업체가 아닌 원청인 동양시멘트의 노동자라는 '묵시적 근로관계'를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뒤 오히려 해고를 당한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들의 얘기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동양시멘트지부 조합원을 비롯한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 48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1심 공판을 열었다.

원고 일부승소 판결이 내려졌지만 노동자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이 들렸다. <매일노동뉴스>가 판결 하루 전부터 당일까지 서울에서 농성하던 동양시멘트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박근혜 퇴진'으로 하나 된 투쟁사업장

“오늘은 사람이 좀 적네요.”

이인용(41) 부지부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처음 만나 건넨 말이다.

지부를 비롯해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등 11개 노조는 지난달 1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시국농성’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확대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사업장별 집회·농성을 뭉쳐서 해 보자는 취지도 있었다. 이 부지부장과 지부 문화체육부장인 이병렬(38)씨가 이날 시국농성에 참여했다.

“현재 남아 있는 조합원은 23명인데요. 3개조로 나눠 번갈아 가며 서울과 삼척을 오갑니다. 한 번 오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활동하는데요. 내일(20일) 1심 판결에 맞춰 전 조합원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오늘은 우리 둘밖에 없네요.”

넉넉잡아 어른 20명은 들어갈 것 같은 농성장은 하늘색 비닐로 덮혀 있었다. '박근혜 정권 갈아엎자'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은 찬바람을 막아 주는 외벽이 됐다. 오후 6시 정부서울청사 정문 옆 공보물을 부착하는 게시판 앞에서 문화제가 열렸다. 14명의 노동자가 문화제에 참여했다. 현장노동자라고 밝힌 정추현(47)씨가 사회를 봤다. 형식은 따로 없었다. “토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 같은 구호와 자유발언, '민중권력 쟁취가' 등이 소형 앰프를 타고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이 부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삼척에서 처음 올라왔을 때 저희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보니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분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픔이 하나가 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부지부장이 말하는 동안 정추현씨에게 농성참여 이유를 물었다. 그는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일한다고 했다. 농성자 중 유일한 정규직 노동자다.

“공장 일이 오후 3시40분에 끝나는데요. 10년 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동지에게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옵니다.”

11개 투쟁 사업장에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도 포함돼 있다.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회사의 구로공장 이전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소송 취하하면 일자리' 유혹, 안간힘으로 버텨

계절이 무색하게 포근한 날씨였다. 날씨 덕인지 농성장 안도 따뜻했다. 정부서울청사 정문 왼편에 설치된 소형발전기가 농성장 안에 전기를 공급한다. 바닥에는 4개의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두 명의 동양시멘트 노동자와 마주 앉았다.

이병렬 부장은 "1심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조합원이 4분의 1로 줄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부는 2014년 5월 만들어졌다.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 ㈜동일에서 일하던 노동자 80여명이 가입했다.

“노조를 조직하자마자 불법파견 혐의로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노동부가 7개월째 답을 주지 않더군요. 결국 중부지방고용노동청 태백지청장실 점거농성에 들어가자 판정이 나왔어요. 동양시멘트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노동부가 시간을 끌고 봐주려 했지만 피해 갈 수 없어 내린 게 ‘묵시적 근로관계’ 판정이라고 봅니다.”

노동부는 지난해 2월 동일과 다른 사내하청업체인 두성기업 소속 노동자들이 실상은 동양시멘트 노동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동양시멘트는 노동부에서 진정사건 결과를 통보받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동일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했다. 나흘 뒤 동일 소속 101명에게 해고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지부는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조합원들은 동양시멘트에 노동부 판정 이행과 복직을 요구하며 현장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회사는 지부를 상대로 15억6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노위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지만 회사는 12억4천억원 상당의 이행강제금을 내며 버티는 중이다.

“(동양시멘트 주장은) 우리가 광구 정문을 막아 업무에 차질을 빚었다는 건데요. 회사가 모은 인력이 광구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분명히 길을 열어 줬습니다. 따라가 보니 미숙련자라서 아무 일도 못하더군요. 업무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일을 꾸민 겁니다.” 이인용 부지부장의 말이다. 손배 청구액은 5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병렬 부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멋대로 금액을 키우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9월 삼표그룹은 동양시멘트를 인수했다. 삼표는 지부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대신 자회사를 설립해 노조를 탈퇴하고 소송을 취하한 노동자들에게만 일자리를 줬다. 80여명의 조합원이 20여명으로 줄어든 배경이다.

“노조를 탈퇴하고 재취업한 직원들의 임금이 인상됐다고는 하지만 회사가 인상분만큼 잔업을 줄여 과거와 조건이 똑같아졌어요. 회사의 갈라치기에 속아 그 사람들이 정규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병렬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남긴 말이다. 노동자들은 오후 7시가 되자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농성장을 빠져나갔다.

"동양시멘트의 시민·노동자 착취, 우리가 멈출 것"

"이곳이 상경투쟁을 하는 조합원들이 머무는 곳이에요."

이인용 부지부장의 안내를 받아 정부서울청사 인근 삼표 본사 앞 천막농성장으로 향했다. 도보로 5분 정도가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농성장은 먼 곳에서도 눈에 띄었다. 본사 건물 앞에 화려한 조명을 주렁주렁 단 두 그루의 나무가 서 있었다. 농성장은 그 사이에 포위당한 듯 쓸쓸하게 웅크리고 있다.

지부는 지난해 8월19일 상경투쟁을 시작으로 본사 앞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자택 근처에서 농성을 했지만 법원이 이를 금지하면서 중단된 상태다.

“상경투쟁 첫날 공교롭게 비가 내렸어요. 조합원들과 비닐을 덮고 잠을 자다가 화들짝 놀라 깼던 기억이 납니다. 근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처마 아래에서 비를 피했어요. 비가 그치자 물기가 있는 바닥에 비닐을 깔고 잠을 청했습니다.”

끼니는 식당에서 해결하고, 몸은 공동화장실에서 씻는다. 법원이 지부 조합원들의 임금청구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뒤 매달 지급되는 100만원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 처음에는 공감의 눈길을 보냈던 경비노동자들의 행동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얼마 전에는 농성장이 기대고 있는 담벼락에 화분을 올려놓는 일로 조합원과 경비노동자가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다.

“건물 꼭대기인 15층에는 삼표가 입주해 있습니다. 여러 층에 삼표그룹 계열사가 있어요. 아무래도 회사 차원에서 얘기가 있었겠죠. 노동자 편가르기를 하는 겁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인용 부지부장은 이런저런 사업에 실패한 끝에 11년 전 동양시멘트에 입사했다. 발파·정비·살수차 운전 등 시멘트 제작 과정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했다. 그러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았다. 한 달 내내 잔업·특근에 매달려야 월급 200만원을 겨우 넘긴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38%를 받았다. 귀마개·마스크·방진복도 정규직용이 따로 있었다.

“우리가 투쟁에 나서자 사내하청업체 임금이 올랐다고 합니다. 회사가 ‘노조 만들면 이런 것도 없다’고 했다네요. 동양시멘트는 삼척 시민들을 착취해 사세를 키운 회사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대화가 이어지던 중 누군가 농성장을 발로 찼다. 순해 보이던 이인용 부지부장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촛불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장 안에서 가벼운 술자리를 만들었다. 안주는 매운 닭발이었다. 며칠 전 있었던 금속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후원주점에서 팔다가 남은 음식이었다. 다들 고단했던지 술자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밤 11시께 농성장에 불이 꺼졌다.

법원, 불법파견만 인정 … 노동자들 "이제 시작"

판결 당일인 20일. 오전 7시도 안 돼 아직 어둑어둑한 시각, 이인용 부지부장과 이병렬 부장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간단히 얼굴을 씻고 본사 앞에서 시위를 했다. 시위는 40분간 이어졌다. 피켓에는 “위장도급 판정에 따른 정규직 전환이 될 때까지 삼표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고 쓰여 있었다. 둘은 단골 식당에서 3천원짜리 누릉지탕과 4천원짜리 콩나물해장국으로 허기를 달랬다. 둘은 “긴장되지 않는다” 혹은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주문을 걸면서 말을 이었다. 1시간 동안 밤을 함께 지낸 노동자들과 "박근혜 구속"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두 사람과 함께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인 안진석(45)씨는 "연대투쟁으로 몸이 힘든 건 한순간"이라며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고를 앞둔 서울중앙지법 동관 566호 법정 앞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지부 조합원인 최창수(44)씨는 “지금껏 다 이겨 왔다”며 “오늘도 무조건 이길 것으로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전 10시5분쯤 선고가 내려졌다. 판결문을 읽는 판사의 복잡한 말 속에 ‘기각’이라는 단어가 섞여 있자 노동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자회견이 예정됐던 정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김소연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이 외쳤다. “나쁘지 않은 판결이에요. 실망하지 마세요.”

동양시멘트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법률대응팀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법원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법원은 노동부가 판단한 묵시적 근로관계는 배척했지만 불법파견은 인정했습니다. 2007년 7월 시행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2년 이상 고용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후 입사자에게는 법원이 직접고용해야 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고요.”

2005년 7월 이후 입사자인 이인용 부지부장은 “씁쓸하지만 실망하지 않는다”며 “법원이 일부만 정규직이었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사측의 갈라치기에 맞선 노조의 대응과 결집을 과제로 던진 판결”이라고 말했다.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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