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20일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 간 도급계약을 불법파견으로 간주하면서 48명의 노동자들이 동양시멘트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법원이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까지 인정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비판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묵시적 근로계약 vs 파견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와 불법파견이 법원에서 인정되면 해당 노동자들이 원청 소속 정규직이 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정규직이 되는 시점이나 과정에 차이가 난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면 하청노동자들이 입사한 시점부터 정규직인 것으로 간주된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입사할 때부터 정규직으로서 받지 못한 각종 임금과 수당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불법파견일 경우에는 두 가지로 나눠진다. 2005년 7월1일 이전에 입사한 노동자들은 일한 지 2년이 된 다음날부터 정규직인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대법원이 불법파견을 확정하는 순간부터 정규직 지위를 얻게 된다. 하급심에서도 고용의무 판결을 내렸다면 원청은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금전적으로 보면 원청과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받는 것이 노동자들에게는 유리하다.

원청 노무부서에 불과했던 하청업체

그런데 금전적인 차원을 떠나 이날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고용노동부까지 인정한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동부 태백지청은 지난해 2월 동양시멘트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관계를 묵시적 근로계약으로 보는 결정을 내렸다. 하청업체의 실체가 없고, 동양시멘트의 노무부서로 봐도 될 만큼 형식적·명목적인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동양시멘트가 임금을 포함해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노동부는 내부 지침을 통해 근로자파견 여부를 판단할 경우 하청업체의 실체 여부를 먼저 본다. 하청업체의 실체가 있다면 원청과 하청노동자들의 관계가 파견인지 도급인지를 구분한다. 원청의 작업배치·변경 결정권, 업무 지시·감독권, 근태관리권 및 징계권, 업무수행에 대한 평가권, 근로시간 결정권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 지침이 2007년 만들어진 뒤 불법파견 판정을 더욱 까다롭게 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부 태백지청이 하청의 실체조차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하청업체는 ‘서류’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도 노동부와 같은 판정을 했는데 서울중앙지법이 다른 판결을 한 것은 하청업체의 형식적인 부분을 실체로 인정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이용우 변호사(법무법인 창조)는 “동양시멘트가 하청업체의 임금을 결정했지만, 형식적으로는 하청을 통해 지급했는데 이런 부분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판례, 사문화되나

대법원이 원청과 하청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사례로는 △경기화학 (2002년 11월) △인사이트코리아(2003년 9월) △삼성중공업(2004년 3월) △현대미포조선(2008년 7월) 사건이 있다. 하지만 2010년 7월 현대차 불법파견 관련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되지 않은 뒤에는 확정판결이 나온 적이 없다.

빙그레 자회사인 KNL물류와 하청업체 노동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서울북부지법 판결이 2015년 12월 나왔는데, 노사합의로 올해 1월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부까지 인정한 동양시멘트 사례에 대해 묵시적 근로계약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이용우 변호사는 “법원이 형식적인 요소에 주목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확립돼야 할 판례를 사문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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