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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필수유지업무 제도 8년, 파업권·공익 두 마리 토끼 다 놓쳐지나친 필수·대체인력에 단체행동권 무력화 … “제도개선 논의 시작할 때”
   
▲ 노동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지난달 17일 철도공사 서울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철도파업 대체인력 투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철도노조 파업이 5일로 70일째다. 노조 역사상 최장기 파업이다. 그런데도 수송대란이니 물류대란이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KTX는 평소처럼 100% 운행 중이다. 이따금 대체인력의 업무미숙으로 사고가 나는 것 외에는 파업을 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열차 운행에 차질이 없다 보니 노사협상에 진척이 없다. 파업을 통해 업무에 타격을 줘서 노조 협상력이 커지거나, 파업 참여율이 저조해 사측이 유리한 고지에 있어야 교섭은 탄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열차는 멈추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일 발표한 조합원 업무복귀율은 8.7%에 불과하다. 노사 어느 쪽도 급할 게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수공익사업장 노조가 파업할 경우 필수업무를 유지하도록 한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파업 장기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도파업 장기화 이면에 필수유지업무제도
티 안 나는 파업, 대체인력은 돈 되는 곳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2008년 시행됐다.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되는 △철도·도시철도 △항공운수 △수도 △전기 △가스 △석유·정제 및 석유공급 △병원 △혈액공급 △한국은행 △통신사업에서는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때 일정 인원을 반드시 업무에 투입해야 해야 한다. 파업참가자의 50%까지는 외부 대체인력을 사용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가 직권중재를 하면 파업을 못하도록 한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시행된 제도다. 직권중재제도가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자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목적으로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쟁의권과 공익의 조화를 이루겠다는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철도노조 파업이 대표적이다.

철도 노사의 필수유지업무 운영안에 따르면 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1만8천372명의 출근 대상자 중 필수유지 인력인 8천460명은 일을 해야 한다. 반드시 유지하는 열차운행률은 KTX 56.9%, 새마을호 59.5%, 무궁화호 63%, 통근열차 62.5%, 수도권 전철 63%다. 통근열차와 수도권 전철은 출근시간에는 100%, 퇴근시간에는 80%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 운행률은 더 높다. 4일 기준으로 전체 열차운행률은 93.1%다. KTX 운행률은 92.5%, 수도권 전철은 99.1%다. 새마을호는 57.7%, 무궁화호는 62.7%에 그친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떨어진 수치가 이 정도다. KTX는 이달 1일까지 100% 운행했다. 통근열차는 아직 100% 운행률을 기록하고 있다. 필수유지 인력에다, 대체인력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9월27일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을 때 국토교통부가 계획한 대체인력 규모는 6천50명이었다. 필수유지 인력(8천460명)과 합치면 1만4천510명이나 된다.

애초부터 노조가 파업으로 공사를 압박하기 힘든 구조다. 남기명 노조 교선실장은 “안 그래도 필수업무 유지율이 높은데, 대체인력까지 들어오니 파업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공익'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공익성을 따지려면 KTX나 수도권 전철보다는 무궁화호나 새마을호의 운행률을 높여야 한다.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는 오지를 중심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공공성이 높다. 반면 KTX가 정차하는 지역의 경우 고속버스나 자가용 등 대체교통수단이 많다.

그럼에도 철도공사는 대체인력을 KTX 운행에 집중시켜 평소와 마찬가지로 운영했다. 반면에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노사가 유지하기로 한 운행률보다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남 실장은 "공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KTX 운행에 주력한 것"이라며 "무리한 대체인력 투입으로 쟁의권을 제약하면서 공익과 안전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 “직권중재 시절보다 협상력 떨어져”

직권중재 대신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것은 필수공익사업장 노조들이 노동위 직권중재에도 파업을 감행해 불법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파업의 위법성을 따지는 기준인 주체·목적·절차 중에서 절차를 위반해 불법파업이 되는 문제를 해소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뒤에도 철도노조 파업을 합법으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매번 “파업의 목적이 법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 정책에 반대했거나 이번 파업처럼 사법적 권리분쟁과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불법화했다. 직권중재가 폐지되고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됐는데도 노조가 쟁의행위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은 셈이다.

노조 쟁의행위가 비교적 많은 병원사업장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2008년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후 응급업무와 중환자 치료업무는 파업 기간에도 대부분 100%를 유지하고 있다. 분만이나 신생아·수술·투석 업무는 60~70%를 유지한다. 핵심 업무를 지원하는 진단·영상·급식·냉난방 같은 업무도 60~70%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파업 때마다 대규모 대체인력이 투입된다.

노조가 파업을 해도 외래진료 업무 외에는 별다른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대부분 불법파업으로 간주돼 구속·해고를 감내해야 했던 병원사업장 노조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파업 파급력과 협상력만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필수유지업무 제도로 인해 병원측이 교섭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며 “무노동 무임금 압박을 받은 노조가 불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병원사업장의 경우 필수유지업무 제도 시행 전에도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같은 곳에서 업무가 마비된 적이 없다. 노조가 자체적으로 최소 인원을 남겼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응급대기반을 운영하는 것이 관례였다. 나 실장은 “당시에도 노조 파업 때문에 환자들의 생명이 위협받거나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지금의 필수유지업무 운영수준은 필요 이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국제기준보다 파업제한 범위 넓어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2006년 9월 노사정 합의와 같은해 12월 노조법 개정, 2007년 11월 시행령 개정 과정을 거쳐 2008년부터 시행됐다. 노조법을 개정하면서 필수공익사업장 범위는 오히려 늘었다. 항공운수사업과 혈액공급사업이 추가됐다. 노조법 시행령에는 각 필수공익사업 중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적용할 업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이 과정에서 제도를 적용받는 업무가 필요 이상으로 확대됐다.

국제기준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필수유지업무의 범위는 지나치게 넓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필수공익사업과 비슷한 개념으로 필수서비스(essential service)를 사용한다. ILO는 파업권을 제한할 수 있는 필수서비스를 “업무의 중단이 국민의 전부 또는 일부의 생명, 신체적 안전이나 건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정의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노조법은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제71조)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규정한다. 개념부터 ILO보다 범위가 넓다.

ILO는 구체적인 필수서비스로 병원·전기·수도공급·전화·항공관제를 지목하고 있다. 사업이나 서비스 범위가 우리나라 필수공익사업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2002년 한국 정부에 “철도와 석유부문은 엄격한 의미의 필수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철도나 도시철도는 다른 교통수단이 많아 업무대체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 안에서도 필수공익사업장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법 개정 과정에서 반영되지 못했다. 노동계가 필수공익사업장 개념과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없애고, 수도 및 전기공급·전화·응급의료·항공관제 사업만을 공익사업으로 지정해 쟁의행위시 최소서비스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이유다.

졸속으로 만든 필수유지업무 범위
“범위와 유지 수준 최소화해야”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수준이 정해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졸속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법이 개정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필수유지업무를 나열한 시행령이 마련됐다. 제도 시행 2개월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필수유지업무 운영수준은 충분한 노사 대화보다는 노동위 결정에 따라 마련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조법은 노사가 운영수준을 합의하지 못해 어느 한쪽이 결정신청을 하면 노동위가 수준을 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노조 쟁의행위를 앞두고 사용자측 신청으로 노동위가 결정하는 일이 잇따랐다.

해당 사업에 대한 노동위의 전문성은 높지 않았다. 사용자측 안과 비슷하게 나오는 사례가 많았다.

현재 철도 노사 필수유지업무 운영안은 2013년 노사가 합의한 것이지만, 충남지방노동위원회가 2008년 결정한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병원사업장도 노조 쟁의행위를 앞두고 2008년 노동위가 결정한 일부 병원의 기준이 비슷하게 적용돼 왔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2007년 시행령 마련 등의 과정이 급하게 추진되는 바람에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운영수준이 졸속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는 “필수유지업무 제도 시행으로 파업권을 형식적으로만 보장하고 실질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국제기준에 맞춰 파업을 제한할 수 있는 사업과 업무범위를 최소화하고 업무유지 수준도 파업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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