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욱 한국철도공사 기관사

“적당히 받아주려 했으나 노조가 정치권에 매달려 사태를 어렵게 만들었다.”

며칠 전 열린 코레일 간부회의에서 홍순만 사장이 한 발언이다. 홍순만 사장은 “노사관계에 정치권이 왜 개입하느냐”는 발언으로 지난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을 발칵 뒤집어 놓았고, 국회발 중재안을 두 번이나 걷어차 버렸다. 홍 사장의 말대로라면 성과연봉제야말로 순수한 노사 간의 문제로 노사합의를 통해 해결할 일이다. 그러나 홍 사장은 지난달 10일부터 3일간 열린 노사 집중교섭에서 “성과연봉제는 기재부 권고사항”이라며 정부 핑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시인했다.

지난달 23일 새누리당 반대로 국토위 내 ‘철도파업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 구성’이 무산된 배경에 국토부와 철도공사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국회는 손 떼라던 홍사장의 이율배반이다. 국토부 철도과장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이른바 ‘작업’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국토부-철도공사 간 짬짜미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철도민영화 위해 ‘바지 사장’ 나섰나

애초부터 홍 사장은 철도노조의 장기파업을 해결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다. 홍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철도공사의 사장이 아니라 국토부 ‘철도분할 민영화’ 계획의 전도사로 파견된 바지사장의 행보를 걸어왔다. 파업장기화를 유도해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철도 구조조정에 제 한 몸 헌신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독불장군의 모습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지난 7월6일 국토부는 사업규모 20조원의 ‘철도민자유치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다음날 홍 사장은 “민자 유치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최연혜 전 사장과 같이 국토부의 ‘민영화 전도사들’과 입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방안’에 따르면 공기업이 재벌들에게 통행세를 내가며 철도를 운영해야 할 판국에 이 무슨 동문서답 같은 소리란 말인가? 수서고속철도(SRT)를 ‘상쾌한 경쟁상대’라고 한 홍 사장의 발언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홍 사장은 지난 10월21일 “파업참여 조합원 7천명이 없어도 정상 운영이 가능하다”라고 큰소리쳤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국토부는 지난달 15일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통해 “철도공사 경영효율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며 그 근거로 “현재 7천여명의 인력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데도 열차가 큰 차질 없이 운행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철도 구조조정을 위한 명분 쌓기이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묻혀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금도 철도현장에서는 끊임없이 열차사고와 장애들이 잇따르고 있다.

외주화·자회사 확대, 분할 민영화 초석
멀티형 통합직 신설, 조합원 단결 저해 목적


홍 사장은 파업기간 내내 파업참여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자회사로 넘기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제살 깎아먹겠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직원들에게 공공연히 할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구의역 사고 이후 외주화로 인한 안전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금 오히려 외주화 확대라니.

철도공사는 파업기간 멀티형 통합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기관사·역무원·전기원·수송원 등 직렬을 특정하지 않고 멀티플레이어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철도의 특성상 철도노동자에게는 오랜 노하우와 숙련도가 요구된다. 멀티형 통합직 신설은 철도안전에 심각한 문제만 일으키게 될 것이 자명하다. 철도에 필요한건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라 팀플레이어다. ‘멀티형 통합직’은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단결을 막기 위한 의도 외엔 아무 것도 없다.

2013년 ‘수서발KTX 민영화’에 맞선 철도노조 투쟁은 국토부의 철도민영화 추진동력을 약화시켰다. 국토부에게 철도노조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인 셈이다. 낙하산 홍순만 사장이야 곧 철도를 떠날 사람이지만, 코레일 직원들은 앞으로도 철도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책임져야만 한다. 사장에게 부화뇌동해 안전을 망가뜨리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켜 철도를 재벌의 먹잇감으로 만드는 코레일 간부들의 행위는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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