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조합원과 연대단체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하이디스 정리해고투쟁 200일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해 840억원의 순이익을 낸 회사가 올해 들어 직원 377명 중 253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고 79명을 정리해고했어요. 공장이 낡아 제품을 만들어도 이익이 남지 않는다면서 공장 문을 닫아 버렸죠. 이달 17일이면 해고당한 지 200일이 됩니다.”

하이디스 해고노동자들이 14일 오후 대만영사관이 입주한 서울 종로구 동화점세점 건물 앞에 모였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했다.

◇"회사가 어려워질 것 같아서"=경기도 이천에 본사를 둔 하이디스는 국내 원조 LCD 생산업체다. 2002년 부도난 현대전자를 분리매각하는 과정에서 중국기업 비오이(BOE)에 팔려 나가는 신세가 됐다. 그 뒤 법정관리를 거쳐 2008년 지금의 대주주인 대만 이잉크사에 되팔렸다.

하이디스가 특허권을 보유한 광시야각 원천기술(FFS)은 이들 외투기업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했다. 중국 비오이그룹은 하이디스의 고급인력을 빼 가면서 노골적으로 기술을 빼돌렸고, 대만 이잉크사는 이천공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내보낸 뒤 FFS 특허권 사업에 매진하겠다는 자체 사업계획을 수립한 뒤 이를 강행했다.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은 외국계 자본이 국내기업을 인수해 특허권을 확보한 뒤 노동자를 대량 해고했다는 점에서 제2의 쌍용자동차 사태로 불린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가장 중요한 정리해고 요건으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해당 법조문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1990년대까지 ‘긴박함’의 정도에 대해 “회사가 파산할 정도의 어려움”(도산회피설)으로 좁게 해석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 위기”도 정리해고 사유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기타 제조업체 콜텍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정리해고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는 해당 판결은 지난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계승되면서 와해되지 않는 완전체를 이뤘다.

정리해고에 대한 사법부의 보수적인 판례 경향은 하이디스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경기지방노동위원회 판정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경기지노위는 하이디스가 막대한 특허권 수익을 올리는 현실은 차치한 채 공장시설이 낡았다는 점을 정리해고 근거로 인정했다.

경기지노위는 “낙후된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회사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정리해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내걸었다. 그중 6번 공약이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였다. 해고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설립하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만에 일자리 공약은 유체이탈 조짐을 보였다. 심지어 회사 경영사정과 관계없이 직원 능력을 기준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 요건 완화마저 추진되고 있다. 직원들의 능력은 사용자가 평가한다. '찍히면 죽는' 정글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 관철되면 사용자들은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 쌍용차나 하이디스 같은 먹튀형 사용자는 정리해고로 한방에 크게, 노조간부 같은 눈엣가시를 내보내고자 하면 일반해고로 야금야금 길게 노동자를 자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복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겁니다. 그런데 정부 계획대로라면 복직이 되더라도 저성과자라는 이유로 다시 잘릴 수 있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일했던 자리에 싼값으로 쓰다 버리는 비정규직이 채워지는 거고요.”

이상목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의 말이다.

“사람을 비용으로 보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더 열악한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난민신세를 면할 도리가 없다”는 해고노동자의 한숨에 정부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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