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바이트 노조
주요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패션쇼 '서울 패션위크'가 열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지난 17일 오후 디자인플라자 건물 밖에서 가면을 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피켓을 위아래로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피켓에는 '21세기 하이패션 시대에 20세기 근무환경'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30대 의상디자이너 지망생 이준호(가명)씨와 아르바이트노조(위원장 구교현)가 패션업계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를 비판하려 기획한 항의 퍼포먼스였다.

이준호씨는 이달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패션노조' 페이지를 개설해 퍼포먼스 참여자를 모집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취업준비 과정에서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와 휴일 없는 야근을 강요하는 근로조건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패션업계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패션업계에는 디자이너 일자리가 적은 데다, 도제(스승-제자)시스템 관행 탓에 패션디자이너와 학생들이 패션쇼 무급 헬퍼(도우미)로 동원되는 일이 잦다. 업체나 개인 디자이너의 인턴으로 들어가 돈 한 푼 받지 못하거나 월 30만~50만원을 받고 일하다 해고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씨는 "한 달에 두 번 쉬고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일해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며 "서울 패션위크에서도 수많은 학생들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온갖 잡일을 하며 시종처럼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디자이너 브랜드 인턴 급여는 30만~70만원 수준이고, 주지 않는 곳도 많다", "대기업들도 인턴 뽑을 때 3개월 후 정직원 전환 가능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약속을 안 지킨다"는 호소가 올라왔다. "사장이 '학원이라고 생각하라'며 급여를 주지 않아, 무보수로 아이디어를 내고 잡일을 했다"는 인턴도 있었다.

이씨는 커뮤니티를 통해 패션업계의 부당노동 사례를 제보받아 공론화할 계획이다. 노조는 "유명 디자이너·대기업들이 청년들의 노동과 아이디어를 착취하는 현실을 고발하는 행동에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