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집 아르바이트생 A(26)씨는 "네가 딸 같으니 볼에 뽀뽀를 해 달라"는 나이 든 손님에게도 억지로 웃어야 했다. 화를 내지도, 손님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런 뒤에는 하루 종일 굶다가 새벽 3시에 밥을 몰아 먹고, 휴일이면 TV만 보기 일쑤다.

A씨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고, 그러다 보니 생활리듬이 이상해진다"며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때는 매니저가 과한 손님을 차단했는데, 여기서는 '네가 손님에게 잘해야지'라는 말이 너무 자연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찜질방·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B(30)씨는 "다짜고짜 화를 내는 손님들을 응대하고 집에 가면 말하기도 싫고 '나는 정말 쓸모가 없어'라고 자책을 한다"고 토로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강도 높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유니온이 편의점·음식점 등 서비스 사업장에서 일하는 만 15~29세 아르바이트생 225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청년 감정노동 실태조사'를 진행해 24일 공개한 결과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5.4%가 "일하면서 기분과 상관없이 항상 웃거나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답했다. 5명 중 4명이 '억지로 웃는'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하면서 감정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응답도 79%나 됐다.

반면 응답자의 73.3%가 "고객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나 신체·언어·성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고객 응대를 계속할지 본인 뜻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64.4%),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도 고객을 피할 수 없었다"(62.9%)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쉬기도 힘들었다. 응답자들은 하루 평균 7.3시간을 일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 비중도 대체로 높았으나 75.3%가 휴게시간을 30분도 갖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유니온은 같은날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정노동 문제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 제고와 아르바이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사업장 매뉴얼 마련, '거부권'보장, 적절한 휴식 보장과 심리치유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년유니온 관계자는 "정부는 감정노동 대책을 아르바이트 고용 사업장 전반으로 확장해 관리·감독하고, 소비자와 사업주 인식 제고를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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