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낙하산은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무색하게 공공기관과 유관기관에 낙하산 마피아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관피아(관료+마피아)는 물론이고 선피아(선거+마피아), 정피아(정치권+마피아), 연피아(연구원+마피아) 등 각종 '○피아'가 공공기관과 산하 협회, 다른 업종 유관기관의 요직을 싹쓸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 산하·피감기관은 '공피아 세상'=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퇴직 공직자들의 산하·피감기관 재취업 양상이 도를 넘어섰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9일 공개한 공피아(공정거래위+마피아) 낙하산 현황을 보면 2003년부터 올해까지 산하기관 및 관리·감독기관의 고위직 임원자리를 공피아가 독식했다. 인원만 21명(중복 포함)이다.

한국소비자원은 2007년 이후 임명된 부위원장 3명이 모두 공정거래위 출신이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은 공정거래위 출신이 원장과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공정거래위가 관리·감독권을 갖고 있는 4개 공제조합의 이사장도 공피아들이 독차지했다. 이들 공제조합은 모두 초대 이사장으로 상조업체 대표 등을 내세웠다가 1년 만에 공정거래위 출신으로 갈아 치우는 수순을 밟았다.

2002년 말 다단계판매 소비자피해 보상기관으로 설립된 직접판매공제조합은 초대 이사장에 박세준 한국암웨이 사장이 선임됐다가 이듬해부터 공정거래위 출신 이한억 전 상임위원·정재룡 전 상임위원·남선우 전 공보관이 돌아가면서 이사장을 지냈다. 지금은 김치걸 전 본부국장이 재임하고 있다.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은 2002년 12월 설립 당시 초대 이사장이었던 정생균 제이유네트워크 대표를 제외하면 2대 박동식 이사장부터 6대 신호현 이사장(현)까지 '5연속 공피아 이사장'을 기록했다.

한국상조공제조합 역시 2010년 초대 이사장은 상조업체 대표가 맡았다가 같은해 12월 김범조 전 공정거래위 서울사무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장득수 전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장이 후임 이사장이 됐다.

◇산자부도 '낙하산 마피아' 천지=산업통상자원부 퇴직관료들의 산하기관 재취업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산업부 퇴직관료 출신으로 산하기관과 관련협회에 둥지를 튼 유관기관 재취업자가 93명이나 된다.

올 들어 5명의 산자부 퇴직자들이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지역난방공사와 에너지관리공단 상임이사, 건설기계부품연구원 본부장 등으로 재취업했다. 지난해에는 21명의 퇴직자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현미·윤호중·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받은 '공공기관 기관장 및 감사 인사현황'을 보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장 74명 중 관피아와 선피아가 각각 31명씩을 차지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금융공기업과 이들이 지분을 보유한 금융회사 34곳의 전체 임원 268명 중 112명이 관피아(57명)·정피아(48명)·연피아(7명) 인사로 분류됐다.

◇정부 대책 실효성 '글쎄'=매년 국감에서 낙하산 인사가 지적되고 있지만 관행을 이유로 쉽사리 청산되지 않고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세월호 사건 이후 공공기관에 관피아 배제 분위기는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산하기관이나 협회 쪽으로는 여전히 관피아 낙하산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선피아·정피아 같은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가고 있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 후속대책으로 퇴직공직자의 재취업 제한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일명 관피아 방지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고, 설사 통과가 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취업제한 대상기관이 늘어나지만 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은 포함되지 않는다. 변호사·공인회계사·세무사 자격을 가진 퇴직관료의 전관예우를 차단하는 내용도 없다.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논란이 거세다.

박근혜 정부가 "낙하산 적폐 근절은 고사하고 늘리지나 말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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