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고양센터에서 AS기사로 일하는 이일호(46)씨는 2012년 여름 고객의 집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 크게 다쳤다. 날카로운 부품에 오른손 중지가 베여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이씨는 고통을 참고 에어컨 수리를 끝낸 뒤 인근 병원에 갔다. 생각보다 부상은 심했다. 다음날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일주일을 입원했다.

그런데 산재처리를 해 주겠다던 센터 팀장의 약속과는 달리 회사에 출근한 이씨가 받은 돈은 병원비뿐이었다. 일을 하지 못한 일주일치 급여도 날아가 버렸다.

해운대센터에서 6년 동안 휴대폰 AS기사로 일한 심경섭(37)씨는 2년 전 근무도중 오른팔을 다쳐 깁스를 했다. 무상수리 요구를 거절당한 고객이 휴대폰을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심씨에게 회사가 해 준 것은 “고객과 잘 풀라”는 말뿐이었다. 재발방지책도, 일을 못한 이틀간 급여도 없었다.

◇산안법 24개 조항 위반=삼성전자서비스 AS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안전보건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속노조는 25일 오전 서울 정동 노조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서비스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올해 1~3월 전국의 48개 센터 조합원 44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면담·전화조사와 현장점검 방식을 병행했다.

조사 결과 48개 센터에서 24개 조항 21만2천869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확인됐다. 사업주의 의무에서 시작해 △용접작업 위험방지 의무 △안전보건교육 실시 의무 △추락방지조치 △안전보호구 지급 의무 △분진·납땜·세척·용접·근골격계부담 작업자 보호조치 △안전교육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센터들은 재해 발생시 산재보험급여 청구 등 사업주 노력의무를 명시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노조는 “전국 176개 센터 중 조사를 한 곳이 30%가 안 되는데도 조사 결과는 심각했다”며 “나머지 센터를 조사하면 상황은 더 심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전보호구 미지급, 환기시설도 미설치=노동자들은 사고 위험이 높은 작업환경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수십미터 높이의 장소에서 수십킬로그램에 달하는 에어컨 실외기 수리업무를 하는데, 10개 센터를 제외하고는 추락방지를 위한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회사의 복장규정에 따라 AS기사들은 미끄러지거나 추락하기 쉬운 구두를 신은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의정부센터에서 에어컨 수리업무를 주로 하는 최호정(33)씨는 “작업장소가 15층 이상의 높이가 아니면 이동식 크레인이 지원되지 않는다”며 “동료들이 허리춤이나 어깨를 붙잡은 채 위험하게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구두가 미끄러워서 회사에 안전장비 지원을 요청하면 ‘개인 돈으로 마련하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무거운 전자제품이 발등에 떨어지는 사고가 빈번한데도 안전화는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조사대상 업체 48곳 모두 안전모·안전화 등 안전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두와 함께 무조건 착용하게 돼 있는 넥타이도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제품을 수리하는 도중 넥타이가 모터에 빨려 들어가 크게 다칠 뻔한 노동자도 있었다.

협력업체들은 산재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AS기사들은 산재로 인정 못 받는 데다, 건당 수수료를 받는 탓에 쉬는 날만큼 급여마저 받지 못했다.

노동환경도 유해물질투성이였다. 제품수리를 하면서 각종 세척제와 가스·납을 취급하는데도 안전물질보건자료가 비치된 사업장은 한 곳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작업을 하면서 각종 흄·미스트·유해가스·먼지를 흡입하고 있었다. 화재·폭발·감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환기시설을 설치한 센터는 48곳 중 7곳에 불과했다.

◇노조, 노동부에 고발하고 위험업무 거부 주문=노조는 이날 삼성전자서비스와 일부 협력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위반 혐의로 노동부에 고발했다. 다음주까지 48개 업체를 모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노동부의 책임이 크다”며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촉구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날 건강권 찾기를 위한 △외근시 구두와 넥타이 착용 금지 △부실한 안전보건교육시 서명 거부 △추락방지책 없는 고소작업 거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아비판과 반성문·대책서 제출 불응 △재해발생시 산재처리를 지침으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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