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을 요약하면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되고, 복리후생적 급여의 경우 ‘고정성’ 여부에 따라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노동자들의 급여수준이 다소 향상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복리후생적 급여 중 상당 부분이 통상임금에서 빠지면서 사업장별로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정기상여금 전쟁 끝나니'고정성' 전쟁=한국노총이 19일 이번 판결에 따른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동계가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적 급여에 대한 더하기 빼기에 나섰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각종 법정수당이 지급될 수 있도록 요구하고, 법원이 제시한 고정성의 잣대에 따라 변동성 성과급이라도 ‘최소 지급액’이 정해진 경우에는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이 후속대책에 담겼다.

내년 임금협상에서 각종 급여항목에 대한 고정성 확보가 노동계에게 주요한 과제로 떨어진 것이다. 사용자들 역시 각종 임금항목의 고정성을 희석시키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제시한 고정성의 기준은 매우 복잡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따르면 ‘근속기간에 연동되는 임금’은 근속기간이 노동자의 숙련도와 밀접하게 연관되고, 근속기간에 따라 임금이 확정돼 있어 고정성이 인정되므로 통상임금이다.

‘근무일수에 연동되는 임금’은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 지급되면 소정근로에 따른 일정액이 확정되므로 통상임금이지만,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해야 한다는 추가조건이 달린 경우라면 통상임금이 아니다. 하지만 근무일수가 15일 이상이면 특정명목의 급여를 전액지급하고, 15일 미만이면 근무일수에 따라 그 급여를 일할 계산해 지급하는 경우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최소한 일할 계산되는 금액의 지급이 확정적이므로 통상임금이다. 반면 단순히 근무일수에 따라 일할 지급하는 경우는 통상임금이 아니다.

노사는 이런 식으로 각각의 임금항목이 고정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임금협상에서 이에 대한 설전을 벌여야 한다. 복리후생적 급여의 상당 부분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갑을오토텍 유사단협 노조들, 체불임금 청구권 박탈=이번 판결로 노동계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체불임금’에 해당하는 통상임금 소송의 실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통상임금 관련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기업 17곳의 단협 내용을 살펴본 결과 이러한 피해는 특히 대공장 정규직노조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갑을오토텍 단협에 따르면 생산직 노동자의 통상임금은 기본급에 직책수당·생산수당·위해수당 등 제 수당을 합한 금액으로 산정된다. 금속노조의 표준단협을 회사 실정에 맞게 적용한 결과다. 금속노조 사업장이 아니더라도 동종업계 노사의 단협은 엇비슷하다.

금호타이어·두산모트롤BG·두산인프라코어·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보쉬전장·센트랄·아페리오·유성기업·코카콜라·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등 제조업체 노사의 단협에도 갑을오토텍처럼 정기성과급을 제외하고 기본급과 제 수당으로 이뤄진 통상임금 규정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내용의 단협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갑을오토텍 회사측)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채 노조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단협을 체결했고, 이러한 단협에 따른 통상임금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인 노사합의 내지 관행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태에서 노조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을 포함됐을 경우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돌려 달라며 청구소송을 내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노조의 요구로 회사가 예상치 못한 재정적 부담을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된다는 것이 이러한 판단의 근거다. 재판부는 “이 같은 법리에 비춰 근로자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갑을오토텍과 유사한 내용의 단협을 가진 노조들은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체불임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재판부가 신의칙을 근거로 근기법의 강행규정성을 배척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제조업체 외에도 강원랜드협력업체·고신대복음병원·서울대·현대증권·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과 같은 서비스·의료·교육·증권·운송 업종 노사의 단협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고용노동부의 예규를 성실히 따랐던 이들 업체의 노조와 노동자들이 근로의 대가인 체불임금에 대한 청구권을 박탈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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