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기자

국민 임단투(임금·단체협상 투쟁)로 불리는 최저임금 투쟁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투쟁구호가 "배고파서 못살겠다. 최저임금 인상하자"였다면 올해는 "최저임금 올려 착한 성장모델을 만들자"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햄버거 한 개 값도 안 되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자는 생존권적 접근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이야말로 소득불균형을 해소하고 내수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 경제이론의 문제로 접근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12일 오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새로배움터에서 열린 '최저임금제도와 경제성장 토론회'도 이런 맥락에서 개최됐다. 최저임금연대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외 주요국 최저임금 동향과 <뉴욕타임즈>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 최저임금의 경제효과 논쟁이 도마에 올랐다.

기업은 수익, 가계는 빚이 쌓이는 기형적 구조

박하순 한신대 강사(국제경제학)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로 임금인상률이 바닥을 기고 있다"며 "위기가 장기불황의 양상을 띠면서 일반적인 임금억제 수준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고용불안과 주택거품 붕괴까지 겹치면서 노동자들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나라의 실질임금인상률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2008년과 2009년 실질임금인상률은 각각 -5.3%, -2.8%를 기록하며 뒷걸음질하다가 2010년 1.0% 상승으로 돌아섰다. 세계 경제위기의 한복판을 지나던 이 기간에도 노동생산성증가율은 각각 1.5%·4.0%·10.4%를 유지했다.

임금인상률이 낮아지게 된 것은 협약임금인상률이 낮은 데 원인이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6~7% 가까운 임금인상률을 기록했는데 최근 몇 년 새 5%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박하순 강사는 "생산성에도 현저히 못 미치는 임금인상은 가계부채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가계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기업들은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 수익성 지표의 하나인 제조업 유형고정자산 이익률은 2000년 이후 꾸준히 상승추세에 있다.박 강사는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임금인상은 둔화하거나 정체한 반면 자본의 수익성은 개선됐다"며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서 결국 경제성장률 둔화라는 장기불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에서 회자되고 있는 임금주도 성장론은 이러한 경제구조에서 비롯됐다. 임금주도 경제체제는 쉽게 말해 친노동 정책을 시행하면 경제가 성장하는 체제다. 만일 친노동 정책을 시행했는데 경제가 축소되면 그것은 이윤주도 체제다.

이윤주도 체제는 친자본 정책을 시행했는데 경제가 성장하는 경우다. 반대로 친자본 정책을 시행했는데도 경제가 위축된다면 임금주도 체제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친노동 정책은 복지국가·최저임금 인상·단체교섭 강화를 말하고, 친자본 정책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인상 억제·격차 확대를 의미한다. 경제학 전문가들은 세계경제를 임금주도 체제로 분석한다. 이들은 임금주도 체제에서 친자본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세계 경제위기를 낳았다는 이론을 펼친다. 다시 말해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임금비중을 높이고 격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 인상' 세계적 트렌드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에 대한 임금을 정직하게 지급할 때 우리 경제는 더 튼튼해진다. 하지만 현재 최저임금으로는 풀타임 노동자가 연간 1만4천500달러밖에 받지 못한다. 사회보장 혜택을 받아도 두 아이를 가진 가족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올해 신년 국정연설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최저임금을 시간당 9달러로 인상할 것을 제안했다.

중국은 지난해 23개 지역에서 최저임금을 상향하고 올해도 13개 지역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다. 인상 폭은 평균 16.9%나 됐다. 낙후된 지역일수록 상승 폭이 컸다. 중국은 2011년부터 5년간 매년 13% 이상 최저임금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15년까지 노동자 평균임금을 2010년의 두 배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홍원표 최저임금연대 전문위원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대외경제 환경 악화에 따른 전략으로 소비주도 성장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노동소득분배율이 1%포인트 높아지면 국내총생산(GDP)이 0.33%포인트 늘어난다는 보고가 제출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홍 전문위원은 “사회적 갈등 해소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소득 총량을 늘리는 것보다 소득격차를 축소하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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