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불발됐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위원장 최강식)는 4일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허용되는 근로시간의 상한선은 연장근로 또는 휴일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1주일(7일)간 12시간임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라”는 내용의 공익위원 권고안을 내놓으며 1년여에 걸친 노동시간단축 논의를 마무리했다.

1주일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초과근로 12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근기법 조항을 보다 구체화해 휴일근로가 남용되는 현실을 개선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행 근기법을 잘 지키라’는 어정쩡한 결론과 다를 게 없다.

실근로시간단축위는 이날 근기법 개정을 전제로 두 가지 단서조항을 붙였다. 첫째는 근기법이 개정되더라도 기업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라는 내용이다. 법이 바뀌더라도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소외집단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중소·영세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단서조항은 예외적으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되, 남용을 방지하는 규제조항을 근기법 개정안에 포함하라는 것이다. 더 많은 생산을 원하는 사용자와 더 많은 임금을 원하는 노동자들 간 담합의 여지를 남긴 것이다. 이럴 경우 시급제를 근간으로 하는 제조업 사업장에서 “오래 일한 만큼 많이 벌 수 있다”는 유혹은 사라지기 어렵다.

이렇게 볼 때 이날 발표된 공익권고안은 현행 근기법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현행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법을 어긴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하는 지름길 대신 우회로를 택한 결과다.

노동시간단축 논의에 동참했던 한국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키는 법 개정을 해야 하다고 권고하면서도 시행시기를 유예하고 일정요건만 갖추면 1주일에 5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허용함으로써 위법적 장시간 노동에 면죄부를 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처럼 애매한 권고안이 나오게끔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바로 고용노동부다. 노동부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2005년도 행정해석(임금근로시간정책팀-528)을 고수한 채 근기법 개정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노동부는 “노동시간단축에 따른 비용부담이 큰 중소기업에게는 제도 적용유예 기간을 부여해야 하는데, 행정해석을 고치는 수준으로는 기업규모별 유예기간을 설정하기 어렵다”며 법 개정 논리를 폈다.

이에 따라 기업규모별 유예기간 차등범위가 노동시간단축 논의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이날 공익권고안에는 ‘기업규모별 단계 적용’이라는 문구만 삽입됐을 뿐이다. 최강식 실근로시간단축위원장은 “노사정 합의를 이루지 못해 그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시인했다. 결국 노동부가 밝혔던 방향의 법 개정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박태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생산량과 임금이라는 조건을 걸고 장시간 노동을 수용해 온 노사 당사자들에게 노동시간단축 방안을 내놓으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노사의 자율적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야 의원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근기법 개정안 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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