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낮에 한 후배 기자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왔다. 갓 서른을 넘긴 그는 언론사 입사 이래 5년여 경제부에서만 기자생활을 하다가 최근 정치의 계절인 대선을 맞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마크맨이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그는 “오늘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가 울산에서 만난다는 얘길 듣고 방금 울산에 도착했다”고 했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내려온 그는 얼마나 답답했는지 내게 “좀 들리는 소식이 없냐”고 물었다.전화를 끊고 몇 군데 전화를 돌려보니 이 대표가 제주에서 울산공항으로 바로 오지 못하고, 김해공항에
몇 년 전에 사무실로 왔었던 한 중년 남성분이 전화를 했다. 요지는 자녀분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용실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데 노동조건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는 이야기였다. 노동법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알려드리기는 했지만, 청년유니온으로 오는 노동상담이 대체로 그렇듯이 명쾌하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3년에 청년유니온이 미용실 실태를 고발하고 나선 이후, 1년에 한두 번쯤은 기자분들이 물어보기도 했다. 이후 진행된 것이 있는지, 최근의 실태는 어떤
내년 대선 쟁점 중 하나는 핵발전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을 원칙으로 삼았고, 야당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었다. 탈탄소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만큼 다음 행정부에서도 핵발전소와 관련한 태도는 누가 됐든 쟁점이 크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벌써 핵발전 문제를 두고 논쟁이 거세다. 최근 구성된 독일의 새 정부는 탈핵 기조를 이어가겠다 밝혔고, 프랑스 여당은 핵발전을 확대할 계획을 짜고 있다.좌파의 전통적 입장은 탈핵이 원칙이었다. 핵발전은 핵무기 개발로 언제든 이어질 수 있고, 핵발전소 사고가 가져오는 파괴적 효과는 인간의
요즈음 ESG(환경・사회・지배구조)는 한창 ‘뜨는’ 이슈다. 기업이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가를 지표화하고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에 활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이 재해 발생에 책임이 있어 ESG 평가가 나빠지면 자본시장에서 불리하게 되므로, 어떻게 해서든 ESG 평가등급을 높이려 든다. 일례로 쿠팡은 지난 6월 덕평물류센터 화재에 대한 안일한 대응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3개월 후 ESG팀을 구성했다.그러나 쿠팡은 지난해 5월 부천물류센터에서 부실한 안전보건관리로 인해 150명 넘는 노동자들이 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산업재해뿐 아니라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의 책무가 증가했다. 관련 법령은 기업에 산재 및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상당한 패널티를 준다. 기업 스스로 산재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다 하라는 취지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기업들은 관련 법령의 본래 취지와 달리, 법적 책임을 면탈하기 위한 사후 대처에 골몰하고 있다. 중소기업, 대기업 가릴 것 없이 말이다.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한 제철소에서는 원청과 하청을 가릴 것
지난 11월19일 ‘2022청년 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 소식을 접했다. 눈길을 끈 것은 기자회견 참가자 뒤편에 붙어 있던 현수막인데 ‘이대로면 5년 뒤에는 더 엉망진창일걸요' 라고 쓰여 있었다. 같은 날 38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이 성평등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현수막에는 ‘대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매일노동뉴스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번 대선에서 거대 양당 대선후보들이 노동공약을 제시하지 않거나 과거로 역행하는 발언들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
1. “삼성전자에서는 직원들을 상대로 사측이 동의서를 받고, 이에 노동조합은 부동의서로 맞서고 있다는데요.” 어제 사무국장인 정 노무사는 자문노조 현황을 보고하면서 말했다. 순간, 나는 삼성전자노동조합이 사측의 인사제도 개편 추진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사측이 동의서를 받아내고 있다는 데에 꽂히고 말았다. 사용자가 노동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아내고 있다니. 20여년을 주구장창 노동변호사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면서 살아오다 보니 가끔 이렇게 꽂히는 것이 있다.2. 최근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보다 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습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다. 자칭 보수라고 칭하는 정당의 후보들조차도 임기 말(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정당을 가리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을 외쳤던 인상깊은 대선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한 후보가 당선됐지만 최저임금은 아직도 1만원이 되지 못했다.그리고 다시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나오는 메시지는 5년 전과 다르다. “최저시급 철폐하겠다.” 최저임금제도를 없앤다고 한다. 이
나는 일본이란 틀을 통해 공부를 시작했다. 일본정치사 속 노동운동의 역할이나 정당과 관계된 노동조합에 관심을 가졌다. 가끔 일본 단체와 교류하며 한국 활동가와 접했어도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노동운동이란 나에게 책이나 뉴스 속에 정형화된 모습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노동조합 연구원에 취직했고, 이곳이 생업이자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됐다. 이들은 뉴스에 나오는 투쟁현장에 결합하고, 회의체에서 노조 조끼를 입고 ‘발언’을 하지만, 저녁에는 맡겨 둔 아이를 찾으러 가는 엄마·아빠였다. 친구 따라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낭
대학 시간강사는 속칭 ‘보따리 장사’로 칭해지곤 했다. 그들의 열악한 현실을 빗댄 참 씁쓸하고 서글픈 표현이다.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다양하게 전개됐다. 2010년 조선대 서정민 강사를 비롯한 여러 시간강사의 죽음을 통한 저항, 한국비정규교수노조와 전국대학강사노조의 지속적인 조합활동과 투쟁 등이 아니었다면 시간강사의 최소한의 처우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시간강사를 둘러싼 법적 판단은 어땠을까? 법원에서 대학 시간강사의 ‘노동자성’이 다투어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시간강사의 노동자성이 인정(대
마르크스가 쓴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이 구절을 명료하게 정리하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세계정신이 사회를 만든다는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노동자계급 혁명의 필연성을 설파한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명제였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여부에 따른 사회적 존재의 적대적 차이 때문에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투쟁할 수밖에 없고, 착취당하는 무산계급이기에 혁명성과 평등성을 내포한 노동자계급은 유산계급인 자본가계급을 타도하고
국제노동기구(ILO)가 권장하는 근로감독관 수는 노동자 1만 명당 근로감독관 1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 수는 적게 잡으면 2천만명이고 많게 잡으면 2천300만명 정도다. 근로감독관 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히 늘어 3천명(일반근로감독관 2천290명+산업안전감독관 705명)에 육박하니, ILO 기준으로 볼 때 대한민국의 근로감독관 수는 충분하고도 남는다.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보면 우리 근로감독관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 노동자 수는 6천만명에 달해 한국의 3배 가까이 된다. 일본에서는 근로감독관이라 하지 않고 노동
우붓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몰리는 바닷가로 향한다. 숙소가 있는 세미냑 거리까지는 우버를 이용한다. 발리에도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시간을 맞춰서 타려면 꽤나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택시나 우버를 이용하게 되는데, 우붓에서는 택시를 부르기가 어려워 우버를 이용하게 된다. 다행히 우버 가격이 그리 비싸지는 않다. 물론 교통체증은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발리의 도로는 이미 수용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섬에 더 넓은 도로를 만들어 내는 것도 답은 아닐 게 분명하니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사용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사회적 경제라는 말에 대한 오해도 많다. 그 이유는 사회적이라는 표현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라는 표현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게 아니라, 소셜 이코노미를 번역한 용어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도 마찬가지로 소셜 디스턴스를 번역한 말이다. 그런데 영어에서 사용하는 소셜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공통으로 사용하는 사회적 경제는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적 경제라
한국일보는 11월17일자 19면에 ‘118원 세금 낭비 지적한 감사관, 본인 출장비는 2천만원이나 썼네’라는 다소 긴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최근 몇 달 사이 본 기사 가운데 가장 웃겼다.전북도의회가 전북교육청 행정사무감사를 하면서 나온 얘기다. 최영심 정의당 비례대표 도의원은 “전북교육청 A 감사관이 118원어치 문자메시지를 보낸 직원에게 세금 낭비라고 호통을 쳤는데 정작 본인은 출장비로만 2019년부터 최근까지 2천168만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A 감사관은 2019년 109회, 2020년 115회, 올해 91회 출장을 갔다.
“요즘 유행하는 테슬라 같은 전기차를 보면 저도 사고 싶어요. 그런데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내연기관차 부품을 만드는 우리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불안합니다.”지역 노동조합 간부의 하소연이다. 그의 일터는 국내 유명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주물제조업체다. 자동차 시장에서는 내연기관차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세계적으로 전기차의 비중은 전체 운행 차량의 1%에 못 미쳤다. 그러나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라는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전기차 비중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신차 판매량에서 차지하
‘이 사건의 경위’. 법률원 변호사로서 노동 사건을 수행하며 법원에 글(서면)을 제출할 때 가장 공들여 쓰는 항목이다. 일반적으로 노동 사건에서 다뤄지는 법과 그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난해 9월3일 선고된 대법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취소 판결 내용 중 김재형 대법관의 별개 의견은 인상 깊었다. 김재형 대법관은 별개 의견에서 법률 규정을 그 문언에 따라 해석할 때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은 법의 문언을 넘어서는 해석을 할 수밖에 없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산불, 미세먼지,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11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4도나 더 오를 전망이다. ‘타오르는 지구’에서 재난은 ‘일상’이 됐고, 세계 곳곳의 생태와 시민들의 삶이 고통 어린 신음에 휩싸여 있다.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생태와 시민의 삶에 연결된 ‘보편적’ 위기지만 그로 인한 재난의 칼날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더 불안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 계급과 인종·젠더·연령·지역 등
남아프리카공화국발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선제적으로 남아공을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오는 승객들에게 한층 강화한 입국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8일 0시부터 해당 국가에서 출발하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이 금지된다. 국내적으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living with coronavirus) 위드 코로나 정책을 하면서도 국외에는 다시 빗장을 걸게 됐다.빗장의 당위성이나 효용성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로 인해 그나마 회복세에 있던 인천국제
1. “이번 대선은 노동이 ‘실종’됐다”고들 한다. 어제(11월29일자) 에서 읽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서 가 개최한 대선 연속좌담회에 관한 기사는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29일로 대통령선거가 100일밖에 남지 않았지만 일부 대선후보를 제외하고는 노동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거대 양당 후보는 노동공약을 애써 비껴가는 모습을 연출하거나 노동시장 유연화로 역주행한다.” 이렇게 노동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쓰고 있었다. 노동의 실종이라니. 가만히 읽어 보니 기사는 ’‘노동 있는 대선 어떻게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