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폭염과 혹한, 홍수와 가뭄, 산불, 미세먼지, 감염병이 전 세계를 뒤덮었다. 11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4도나 더 오를 전망이다. ‘타오르는 지구’에서 재난은 ‘일상’이 됐고, 세계 곳곳의 생태와 시민들의 삶이 고통 어린 신음에 휩싸여 있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생태와 시민의 삶에 연결된 ‘보편적’ 위기지만 그로 인한 재난의 칼날은 늘 그렇듯 가장 먼저, 가장 깊이 더 불안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 계급과 인종·젠더·연령·지역 등의 분별이 교차하는 사회적 관계에 따라서 기후변화가 촉진하는 여러 사회적 재난들은 우리 세계의 차별과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

국제기구, 교토 메커니즘, COP의 실패들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가와 연구자 등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전망하고 경고해 왔다. 이러한 노력이 1990년대부터 국제기구 단위의 기후변화에 대한 제도적 대응을 이끌어 냈다. 이들 국제기구와 정부 간 협상을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대응은 이른바 ‘교토 메커니즘’에 기반을 뒀다. 공동이행, 청정개발체계, 탄소배출권 거래 등 시장원리에 입각해 온실가스 감축을 꾀한다는 북반구 국가들과 기업의 이해, ‘서로 싸우는 형제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그들만의 다툼과 화해가 지난 30년간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사회의 제도적 대응을 주도해 왔다. 이들의 ‘의도된’ 실패가 오늘날 전 지구적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CBDR,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이라는 국제기후협약의 원칙은 무시됐고, ‘차별적인 책임’은 북반구 선진국들과 기업들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남반구 가난한 국가들의 시민들, 어린이들, 전 세계 불안정 노동자들, 이주민들, 여성들, 소수자들에게 전가됐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의 변화를

이들 ‘서로 싸우는 형제들’의 ‘이윤 경쟁’에 더는 지구의 생태와 우리 삶의 문제들을 맡겨 둘 수 없다는 전 세계 시민들의 운동이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롭게 성장해 왔다. 2007년 발리에서는 ‘지금 기후정의를! (Climate. Justice Now!)’이라는 이름의 국제적인 연대체가 출발했다. 201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는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Peoples’ World Conference on Climate Change and Mother Earth’s Rights)가 열렸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운동의 지향을 담은 민중협정을 채택했다.

2019년 9월 글로벌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에는 150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했고, 지난 6일에는 27차 유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가 열리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10만명이 모여 COP26의 무능력과 모순에 항의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코차밤바 민중협정이 명시했던 오늘날 기후정의 운동의 요구는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와 노동, 정의로운 전환

오늘날 극단에 이른 기후의 위기와 노동의 위기는 모두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뿌리를 내린 열매로, 서로 양분을 더하고 나누면서 자라난다.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은 기후위기가 촉진하는 일할 권리 위협, 노동(기본)권 후퇴, 지속 가능한 일과 삶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일하는 모두의, 노동자와 시민들의 존엄을 지켜 내기 위해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깊이 관계 맺은 노동자들의 조직된 혹은 조직되지 않은 힘들을 함께 고민하고 연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후위기와 노동의 대응전략,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의 교차와 연결성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실천이 소위 ‘정의로운 전환’ 담론을 통해서 다뤄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사회의 생태적 가치의 적대적 분별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미국 조직 노동운동에서 제시됐던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국제기구 차원의 제도적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폭넓게 사회화되면서 그 개념에 대한 이해와 활용도 다각화했다. 이제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기업의 ESG경영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부터 사회주의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두가 사용하는 표현이 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기구를 통해 사회화된 좁은 의미의 전환을 넘어서 폭넓은 전환, 체제의 근본적 구조를 묻고 다투는 소위 ‘변혁적 관점’에서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이 맞닿은 ‘정의로운 전환’을 설계하고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대응이 다만 전환 시기, 일할 권리의 문제를 다투는 것을 넘어서서 일을 멈출 권리, 일을 멈추고도 생존할 권리, 모든 시민이 계급과 인종·국적·젠더·연령 등의 사회적 분별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간과 동물이, 다양한 생태가 공존할 권리에 대한 여러 주체의 다양한 요구를 함께 이해하고 연대를 조직해 노동자와 시민의 존엄이 실현되는 새로운 체제를 향하는 폭넓은 사회운동을 조직하는 일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실천들은 노동자와 시민 개인의 현실, 사업장 현실, 지역사회 현실, 국가의 현실에 대응하는 구체성과 고유성을 담보하는 한편, 세계적 차원으로 조직된 자본주의와 기후의 위기, 노동의 위기에 저항하는 국제적 실천과 연결돼야 한다. 홀로 가늠하기 어려운 고민을 두서없이 나열한다. 함께 나누고 다투며 답을 찾아갈 수 있기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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