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우붓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몰리는 바닷가로 향한다. 숙소가 있는 세미냑 거리까지는 우버를 이용한다. 발리에도 버스가 다니기는 하지만, 시간을 맞춰서 타려면 꽤나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택시나 우버를 이용하게 되는데, 우붓에서는 택시를 부르기가 어려워 우버를 이용하게 된다. 다행히 우버 가격이 그리 비싸지는 않다. 물론 교통체증은 가는 길이나 오는 길이나 다를 바가 없다. 발리의 도로는 이미 수용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섬에 더 넓은 도로를 만들어 내는 것도 답은 아닐 게 분명하니 그냥 이대로 버티며 살아갈밖에 도리가 없다. 세미냑과 쿠타 등의 시내에서는 동남아시아 ‘카카오T’라고 할 수 있는 그랩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발리에서는 블루버드 택시를 이용하는 쪽이 가장 안전하다. 블루버드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택시 브랜드인데, 깔끔한 차량과 바가지 없는 서비스로 유명하다. 블루버드 택시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지자, 너도나도 택시에 파랑새를 그리고 다니는 통에 외관만 봐서는 진짜 블루버드 택시를 구별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 탔다가는 바가지를 제대로 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블루버드 전용앱을 이용해서 호출하면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길에서 택시를 잡아 타는 편보다는 앱을 이용하는 쪽을 권한다. 평화로운 여행을 위해서는 조금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숙소는 세미냑 거리 조금 위쪽의 작은 리조트로 정해 뒀다. 세미냑 거리는 풀빌라와 명품 파는 가게들로 한참 떠오르고 있는 발리의 뉴페이스다. 풀빌라들이 차지한 거리는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꽤나 폐쇄적인 구조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공간임은 분명했다. 바닷가를 끼고 자리 잡은 소위 물 좋은 클럽과 클럽식 카페도 풀빌라에 버금가는 세미냑의 아이콘 중 하나다. 이런 곳에서 놀기에는 내 연식이 이미 될 대로 된 지라 찾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그저 맛집이나 찾아 헤맬 뿐이다. 그래서인지 세미냑 해변은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이곳 해변은 걸어 다니면서 보는 곳이 아니라, 잘 갖춰진 비치 베드가 늘어선 클럽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 칵테일 한잔 들이키면서 내려다보는 곳으로 맞춰진 해변일지도 모르겠다.

세미냑 거리의 땡볕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녘에 누군가 숙소 창문을 잡고 흔드는 소리에 깨어났다. 알고 나서야 황당한 생각 같았지만, 이 동네 성질 사나운 원숭이들이 습격이라도 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살짝 쫄아 거실로 나가 보니 원숭이는 보이지 않고 그저 사방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보다 한끝발 더 예민한 손님들은 이미 밖으로 뛰쳐나와 주위를 둘러 보고 있었다. 지진이었다. 흔들림은 얼마간 더 이어지다가 멈췄다. 발리가 화산과 지진의 섬이라는 게 그제서야 떠올랐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본다. 발리 본섬에서 조금 떨어진 롬복섬에 진도 6에 가까운 지진이 났다는 소식이 떠 있었다. 제법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도 이곳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놀라는 기색이 별로 없었다. 숙소 프런트에 가서 상황을 물어 봐도 지진이 있었는데 여기서 먼 곳이라 괜찮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로 봐서 이 사람들 이 정도 진동에는 이미 내성이 갖춰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진을 신문과 다큐영상으로만 배운 나 같은 쫄보는 한동안 심장이 벌렁거렸고, 그 후유증은 발리 여행 내내 이어졌다.

지진으로 잠시 나갔던 정신을 수습하고는 쿠타해변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파랑새 택시를 불러 쿠타해변에서 가까운 여행자 거리에 내렸다. 쿠타해변은 세미냑해변과 함께 휴양지 발리를 대표하는 해변이다. 쿠타해변은 오래전부터 발리의 명성을 만들어 온 해변으로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핑을 즐기러 온 젊은이들에게는 여전히 핫한 곳이다. 젊은 주머니를 위해 조금 낡았지만 가성비 좋은 숙소와 식당이 나래비를 서 있는 여행자 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눈에 들어온 식당 어디를 가도 비슷한 수준의 여행지 음식이 나온다. 맛집투어가 아니라면 실망할 정도는 아니다. 해변으로 나가 보면 제법 거칠어 보이는 파도 위를 날아다니는 서퍼들과, 2인1조로 서핑보드를 들고 강사 뒤를 유치원 병아리들마냥 쫓아다니는 초보 서퍼들로 붐빈다. 나처럼 물놀이에 큰 욕망이 없는 여행자라면 해변에 놓여진 비치 파라솔과 의자 한 두 개를 빌려 몸을 늘어지게 만들고는 발리의 뜨거운 태양을 향해 눈을 가늘게 찢는 한량 모드로 변신하는 게 딱이다. 물론 한 손에는 얼음 쟁인 콜라나 맥주 한 캔 정도를 들고 있어 주는 게 이 그림의 완성본이다. 쉴 새 없이 부서지는 파도와 서퍼들과 패러글라이딩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다 햇빛 속으로 사라진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이렇게 늘어져 있는 일. 그러다 해질녘의 붉은 바다까지 보고 나서 슬슬 여행자 거리로 옮겨 가 배를 채우는 것이 쿠타해변에서의 교과서적인 움직임이다. 물론 취향을 존중하는 편이라 서핑과 해양스포츠를 원한다면 애당초 ‘여행냄새’가 아닌 다른 교과서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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