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7시40분께 하중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의 쾌유를 비는 촛불집회 취재를 마치고 상황실로 돌아오는 중에 자진해산 소식을 들었다. 실은, 4일전부터 자진해산 후 현장복귀 투쟁으로 전환해 파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포항건설노조는 이러한 의견을 일축이라도 하듯 이날 오후 4시께 정부의 강경진압 시사에 대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발표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포스코 본사 안은 자진해산을 결정한 농성자들을 맞기(?) 위해 소방차와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경찰병력을 본사 안으로 재집결시키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단전된 건물도 환하게 불빛을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오후 8시30분께 배관을 타고 내려 온 6명의 농성자들이 “집행부가 경찰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자진해산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농성장 소식을 전한 것이다.


자진해산에서 재투쟁으로 선회

몸이 좋지 않아 먼저 내려왔다는 이 조합원은 “경찰이 교섭 완료 때까지 노조 지도부 18명에 대한 체포 유보를 약속했는데 이를 번복해 집행부가 자진해산이 아닌 재투쟁을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집행부가 농성을 푼 뒤 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이번 사건을 정리하고 자진출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도 경찰이 노조와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며 분개했다.

포항건설노조 상황실 역시 경찰이 자진해산과 관련해 약속한 △농성 노조원 안전귀가 보장 및 사법처리 최소화 △교섭 완료 때까지 노조 지도부 18명에 대한 체포 유보 △민·형사상 손해배상 소송 자제 요구 약속을 번복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포항남부서 정보과 형사와 오후 6시께 이같은 약속을 주고받았으나 1시간30분이 지난 후 이를 번복했다고 주장했다.

오후 9시께 노조의 자진해산 방침이 최종 재투쟁으로 선회하자 경찰과 취재진 모두 당혹스런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9시5분께 이성억 포항남부경찰서장은 농성자들의 자진해산을 유도하는 사내방송을 시작했다.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면 공직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서장 말을 안 듣고 (자진해산을) 망설이는 것은 판단의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저를 믿고 지금 바로 내려오십시오. 집행부는 반드시 사법처리하겠지만 여러분은 선처하겠습니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난 오후 10시까지 간간히 농성장을 이탈하는 조합원의 모습이 보였지만 자진해산 방침을 철회한 노조는 요지부동인 것으로 보였다. 기다리던 취재진들도 '오늘 상황은 여기까지'라며 자리를 떴고 경찰도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 11시께 포항건설노조 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집행부가 그동안 자진해산을 요구했던 농성자들을 중심으로 이날 내려보내기로 결정했으며 남은 1천여명은 ‘결사항전’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는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전해졌다.


농성장 이탈 ‘봇물’

그리고 30분 후 이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농성자들이 줄줄이, 줄줄이 내려왔다. 경찰 역시 이들의 신분확인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휴대폰으로 수배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노조간부 명단과 대조했다. 그리고 이들의 소지품을 꺼내고 금속탐지기로 온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또 휴대폰을 일일이 검색해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내렸던 집결명령 등을 확인한 후에야 귀가조치했다. 물론, 확인서라고 불리는, 이들이 농성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이후 경찰의 출두요구 시 출석하겠다는 서명을 받고서 말이다.

20일 자정을 넘어 21일 오전 2시까지 이들의 행렬은 계속됐다. 각층에서 내려온 이들은 대부분 5층에서 4층으로 연결되는 70cm폭의 배관통을 타고 내려왔다. 여전히 5층과 4층으로 연결된 계단은 막혀 있었다.

귀가하는 조합원들에게 취재진들이 몰렸다. 그들은 “집행부가 내려오는 것을 막는 거냐, 위에 상황은 어떠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부었다. 용접분회 소속이라고 밝힌 한 조합원은 “집행부가 내려갈 사람은 내려가고 최후까지 집행부와 남아 투쟁할 사람만 남자고 이야기해 내려오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면서 “장기간 농성으로 너무 힘들어서 하는 수 없이 내려왔다”고 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8일 단전 조치 후 사발면도 생라면으로 먹어야 해서 10명 중 9명은 배앓이로 고생을 했다는 것. 20일 단수조치까지 되자 화장실도 막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한번 시작된 이탈 행렬은 오전 2시가 넘어서도 계속됐다. 이지경 노조위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으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포항건설노조 상황실 관계자 역시 “집행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서 답답해 했다.

오전 3시께 6층에서 내려왔다는 한 조합원은 “집행부가 소수의 인원만 빼고 결사투쟁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옆에 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오전 4시께 대구지방경찰청 공보관이 포스코 본사 안에서 약식 브리핑을 갖고 “(농성시작 후) 현재까지 2천여명이 넘게 이탈했으며 현재 일반 노조원은 대부분은 나오고 집행부에 대해서는 검거작전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쟁…”

브리핑이 끝나자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소화기와 랜턴을 들고 농성장 위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40분 후인 오전 5시께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농성이 종료됐다. 경찰은 최종 브리핑을 통해 "현장에 남은 집행부 8명을 검거했다"면서 "각층을 수색 중"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1시간여 지난 오전 6시께 포스코 농성지도부 8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진들이 몰려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경찰은 “주요 범법자와는 인터뷰 할 수 없다”는 자체 지침을 내세워 강하게 가로막았다. 이지경 노조위원장은 연행돼 끌려가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투쟁”이라고 외쳤다.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8일하고도 반나절 동안 계속됐던 3천여명의 포항건설노동자의 포스코 농성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경찰의 작전이 마무리되고 취재진에게 공개된 농성장 한 귀퉁이 유리창에는 '살고 싶다'는 농성자들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8일간의 농성 결코 헛되지 않았다
"포스코 상대로 다시 투쟁하겠다"
농성자들의 해산 소식이 알려지자 정문 밖에서는 미리 나와 있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이 부슬비를 맞으며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는 농성자들의 등을 도닥이며 수고했다고 담배 한가치를 건네는 이들에게 8일간의 시간은 헛되지도 무모해 보이지도 않았다.


8층에서 내려왔다는 한 조합원은 “포스코를 상대로 이만큼 대찬 싸움 한번 해봤음 그걸로 됐죠”라며 “이번엔 포스코 무릎을 꿇리는 데 실패했지만 다음이 있지 않느냐”며 웃음을 짓는다.


다시 또 거리로 나설 것이라는 질문에 이 조합원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농성장에서 나온 이유가 다시 싸우기 위해서”라고 운을 뗀 그는 “생라면을 먹으니까 설사만 나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아서 차라리 나와서 밥먹고 밖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낫겠다 싶어 내려온 것”라고 답했다.


그러나 나오는 이들의 얼굴이 모두 환하지는 않았다. 남아 있는 농성자들을 두고 먼저 내려왔다는 미안함 때문일까. 용접분회의 한 조합원은 “몸이 아파 먼저 내려오긴 했지만 집행부들과 남은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하는데 나만 내려와서 미안할 뿐”이라면서 “빨리 기운차려 반드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나 역시 다시 투쟁에 나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덧붙인 마지막 말.


“포스코가 강경하게 입장을 내자 정부가 얼씨구나 함께 북을 치고 언론이 포장해 우리를 공격하는 행동이 가장 속상하다”는 그는 “우리가 포스코를 점거한 이유는 건설현장에서 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발주처와 시공사인 포스코와 포스코 건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며 그 책임을 지라고 농성을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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