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4월 총선 과정에서 우리나라 최대 대중조직인 양대 노총의 영향력 발휘가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한국노총은 사실상 여야 정당 모두를 지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기로 했고, 민주노총은 정치·총선방침을 두고 내부가 갈라지면서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상 모르는 ‘반노동’ ‘친노동’
“당락 가르는 총선투쟁” 공언했지만…

한국노총은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중앙정치위원회를 열고 22대 총선방침을 심의·의결했다. 26~27일 개최할 온라인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할 정치방침 안건을 정리했다.

이날 의결한 총선방침은 반노동 정당을 심판하고, 친노동 후보 다수 당선을 응원한다는 2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 문재인 정권 중 치러진 21대 총선에서는 “노동정책의 후퇴를 저지하고 반노동정책을 무력화”하겠다고 정했는데, 이번에는 “노동정책의 후퇴를 저지하고 반노동 정당을 심판”하겠다는 내용으로 조금 수정했다.

한국노총은 4년 전 “노동존중 정책협약의 확고한 이행과 지속가능한 노동존중사회 실현의 교두보를 마련한다”며 한국노총 지지 후보를 발표한 바 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임이자·김형동, 더불어민주당 김영주·한정애 후보 등 60명을 지지후보로 정했다. 이번에는 “친노동 후보 다수 당선”을 방침으로 정했다. 여야 정당을 불문하고 지지 후보를 정하겠다는 취지로도 해석된다. 문재인 정권에서의 총선방침과 윤석열 정권에서의 총선방침이 별다른 차이가 없는 셈이다.

무색무취한 정치방침을 정한 데에는 ‘안전한 길’을 가려는 현 집행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대선에서 한국노총은 원내 4개 정당 대선후보 선호도를 대의원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지지후보를 정했다. 지지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낙선하자 내부에서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곧바로 치러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산별 회원조합과 지역본부에 지지후보 결정을 위임하면서 사실상 정치방침 결정 주도권을 포기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중앙정치위에서 결정한 정치방침이 임시대대를 통과하면 ‘4·10 총선 승리 실천단’을 구성해 반노동 정당 심판, 친노동 후보 선정 등의 구체적 사업을 결정한다. 실천단은 한국노총 사무총국 주요 간부들로 구성한다. 김동명 위원장은 여러 자리에서 “특정 선거구에서 당선을 결정짓는 총선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선거법에 따른 선거운동 제약으로 대규모 유세 등은 할 수가 없다”며 “조합원들에게 친노동 후보를 대상으로 정치후원금을 내도록 하자거나, 투표독려 활동을 하는 등의 방식은 가능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중앙정치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반노동 정당이 어느 정당인지 정치방침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반대 목소리가 있어 수용되지 않았다”며 “두루뭉술한 정치방침이 나왔지만 한국노총은 다양한 정치 의견을 가진 조합원이 모인 대중조직이기 때문에 (선명한 정치방침 결정을 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총선방침 ‘또’ 결정 못 해
정파별 ‘각개전투’ 총선 치를 듯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민주노총도 위력 있는 총선 운동·투쟁을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이날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한 임시대대에서 민주노총은 올해 사업계획과 정치방침 등을 논의했다. 지난해 9월 정한 정치방침을 두고 불거진 갈등이 임시대대를 집어삼켰다. 지난해 당시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양당체제 타파를 위한 정치사업을 전면화하고,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총선방침을 수립한 바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결합한 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날 임시대대에서도 “연합정당 건설·후보 단일화 등 총선에서 보수정당과 연대·연합하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내용의 총선방침 수정안이 제출했다. 민주노총 총선방침에 따라 진보당 지지 철회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진보당 지지 철회하자는 것은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진보당 통해 연합을 통해 윤석열 심판하고자 하는 민주노총 안팎의 사람들과 단절하자는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나왔다. 진보당 지지철회를 주제로 삼은 논의가 오가는 사이 하나둘 회의장을 떠나는 대의원이 늘어났다. 대의원 1천2명이 참석했던 임시대대는 정치방침 논의가 이어지며 763명만 남아 성원 부족으로 유회됐다. 민주노총 재적 대의원은 1천794명이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5일 정기대대가 성원 부족으로 유회돼 다시 열린 이날 임시대대마저도 무산되면서 사업계획과 예산을 결정하지 못하게 됐다. 양경수 위원장은 “결과와 상관없이 (총선방침) 논쟁을 매듭짓고 싶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못한 것이 현재 상황”이라며 “빠른 시간에 사업계획을 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온라인 대의원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대의원대회를 다시 열어 사업계획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1일 예정된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이후 일정과 방침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제정남·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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