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정한 근로기준법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 나왔다.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노동시간을 강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합의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헌재 “장시간 노동문제, 세계적 심각 수준”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8일 사업주 A씨 등 16명이 “주 52시간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53조1항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근로기준법 53조1항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1주 40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1주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강제한 조항이다.

A씨 등은 계약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2019년 5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주 52시간 근로가 인간의 존엄성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주 52시간 상한제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청구인의 계약의 자유 및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 배경에는 ‘장시간 노동’ 현실이 깔렸다. 주 52시간 조항의 입법취지를 강조했다. 헌재는 “우리나라의 장시간 노동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며 “휴일근로시간이 1주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따라 1주 최대 68시간의 근로가 가능하도록 적용된 관행이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주 최대 근로시간이 휴일근로를 포함한 52시간이라고 분명히 했다. 헌재는 “2018년 3월20일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2조1항7호에 ‘1주’가 휴일을 포함한 7일을 말한다고 정의규정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전제로 헌재는 입법목적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주 52시간 조항이 실근로시간을 단축시키고 휴일근로를 억제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다.

“노동자 휴식 보장 중요, 입법자 판단 합리적”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측면에서 노동시간 강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이어졌다. 헌재는 “입법자는 주 52시간 상한제로 인해 근로자에게도 임금 감소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근로자의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을 정착시켜 장시간 노동이 이뤄졌던 왜곡된 노동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입법자의 판단이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주 52시간 상한제조항은 침해의 최소성에 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주 52시간 상한제로 인한 피해를 완화할 정책이 시행되는 점도 근거가 됐다. 헌재는 “오랜 시간 누적된 장시간 노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은 더 크고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며 “주 52시간 상한제조항은 법익의 균형성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의 유예기간과 한시적인 상시 3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특례,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의 중복지급 금지 등 대안이 법률에 마련됐다는 것이다.

헌재는 “근로시간법제가 헌법 32조3항의 근로조건 법정주의의 헌법적 근거를 지니고 있고, 사회적 연관관계에 놓여 있는 경제 활동을 규제하는 사항으로서 입법자의 정책판단에 대한 위헌 심사를 할 때는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한 입법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완화된 심사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근로시간법제와 같이 다양한 당사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입법자의 역할을 존중해 위헌심사를 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A씨 등이 함께 청구한 최저임금법 조항은 심판청구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