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의료노조가 26일 서울 영등포 노조 회의실에서 의사 집단 행동 관련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주말 새벽 수도권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저하됐다. 고농도 산소 공급이 필요했지만 당직을 서던 교수와 연락이 닿질 않았다. 전공의는 사직서를 쓰고 근무지를 이탈한 상황. 간호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던 때 때마침 병실을 지나던 다른 학과의 교수가 상황을 발견하고 산소공급을 지시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관상동맥이 막혀 혈관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전공의가 없어 수술할 수 없다”는 통보에 절망했다. 역시 다행히 교수가 시술로 혈관을 뚫어 중대한 위기를 넘겼지만 재발 가능성이 있어 수술 여지는 남아있다.

PA간호사, 의사 ID로 대리처방·의무기록 작성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9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내고 집단 진료거부를 시작한 뒤 의료현장 곳곳에서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가 19일 저녁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신고된 사례만 19일부터 219건이다.

결국 사망사고도 발생했다. 23일 낮 의식장애를 겪던 80대 여성이 심정지까지 왔는데도 병원 7곳으로부터 의료진이 없다며 수용 불가 통보를 받았고, 가까스로 입원한 한 대학병원에서 10분 만에 숨졌다.

환자 피해만이 아니다. 전공의가 빠져나간 자리를 지키는 임상전문(PA) 간호사의 피해도 누적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노련은 이날 오전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PA간호사 피해를 알리고, 전공의 복귀를 촉구했다.

윤수미 인하대병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은 “PA간호사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뒤 약물 대리처방, 치료용 바늘 삽입과 제거, 동뇨관 삽입, 의무기록 작성 같은 전공의 업무에 내몰려 있다”며 “환자 안전을 위해 선의로 업무에 임하더라도 하나하나가 모두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 의료사고와 보복성 고발에 따른 책임 위험에 노출돼 떨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방 한 사립대병원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 간호사 A씨는 PA간호사들이 이번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로 더 많은 의사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고 호소했다. A씨는 “의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대리처방을 하고, 의무기록 작성을 비롯해 침습적인 처치(체내로 들어가거나 신체 절개·관통이 필요한 치료)나 응급환자 발생시 심폐소생술까지 하고 있다”며 “외래의 경우 연장근무가 많이 발생하고, 전공의 부재로 인한 시술 및 진료 취소 전화 업무도 과중되고 있어 PA간호사들은 근무형태가 변경돼 주말에도 출근하고 평일에도 야간근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의 집단 진료거부는 명분이 없다며 복귀를 촉구했다.

정부 “전공의 복귀 시한 어길시 행정처분”

정부는 강경대응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날 오전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29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는 전공의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시한을 못박았다. 이후에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의사 면허 박탈을 포함한 행정처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편 국회에서는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협상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본인 SNS에 “의사는 파업을, 정부는 진압 쇼를 중단해야 한다”며 “파업 그 이상을 해도 의대 정원 확대는 피할 수 없고, 의사 파업은 국민 관점에서 용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의료현장에서 수용 가능한 적정 규모는 400~500명 규모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앞서 의사단체와 정원 증원 규모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어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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