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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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가 여야 논의 끝에 불발됐다. 국민의힘이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설립을 더불어민주당에 제안하면서 여야 논의는 한때 급진전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주당은 의원총회 후 “법안을 시행유예하는 것과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설립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게 오늘의 결론”이라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다만 “유예 절대 반대는 아니다”며 여당이 다른 안을 가지고 오면 그걸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은 견지했다.

여야가 이미 시행 중인 법을 유예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멈추지 않고, 고용노동부도 앞장서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부작용을 홍보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당 안, 매력적으로 못 느낀 듯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며칠 앞두고 개정안 처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홍익표 원내대표가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 조건으로 설립안전보건청 설립을 제안하면서다. 여당이 고민 끝에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을 제안하면서 여야 논의는 이날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민주당은 의원총회 논의 끝에 여당의 제안을 거부했다. 의원총회 종료 뒤 기자들과 만난 홍익표 원내대표는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생명이 더 중요하다”며 “정부여당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대로 시행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여당의 산업안전보건지원청 안에 구체적 평가를 하진 않았지만 해당 제안이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말에 따르면 여당이 제시한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은 산재를 예방·지원하는 기구로 단속이나 조사 업무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현재 안전보건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과 중첩돼 사실상 외청 설립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안전보건의 경우 법을 통한 규제의 성격이 커 산재 예방 활동과 감독·수사 업무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산재예방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청의 원조격이 영국의 HSE 감독관도 사업장에 조언 및 지원 제공뿐 아니라 현장점검, 법적 강제집행 조치 등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시행유예 VS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구도 만든 민주당 책임론 커져

이날 여야 합의는 무산됐지만 민주당이 시행유예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으면서 현장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나서야 할 사업주의 눈과 귀가 국회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과 산재 예방에 앞장서야 할 고용노동부도 현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정식 장관은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회도 사회적 약자일 수 있는 중소·영세 상공인의 부담도 덜면서 산재예방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중대재해가 발생한 50명 미만 사업장을 찾아 사업주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될 경우 생계가 어려워진다는 현장 노동자의 말을 대신 전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애초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50명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를 거래대상으로 삼은 게 혼란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높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유예를 맞바꿀 문제가 아니다”며 “산재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드는 것은 정부가 별도로 검토해 추진할 문제다. 마치 두 사안이 연계된 것처럼 조건을 건 것은 법 시행유예 논의의 빌미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안전공학) 교수는 “여당이 제안한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은 적당히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만든 보여주기식 미봉책으로 안 하느니만 못한 안”이라며 “산업안전보건지원청은 이제까지 한 번도 논의하지도 않았던 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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