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해 9월26일 오전 8시30분경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에서 227일간 1인시위를 하던 방영환(사망 당시 55세)씨가 분신했다. 사고 후 경찰과 구급대가 출동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방씨는 분신 10일 만인 10월6일 새벽 6시 숨졌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지만 한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작열통’이라는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화상으로 인한 통증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으로도 꼽힌다. 그래서일까. 노동자들은 종종 가늠할 수도 없는 마음을 담아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향해 제 몸에 불을 댕긴다.

고인은 2022년 11월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원직복직했지만 사실상 사납금제로 회귀하는 근로계약서를 거부하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수개월을 지내야 했다. 해성운수 정아무개 대표는 1인시위하던 고인을 폭행하기도 했다. 정아무개 대표는 현재 폭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5년을 구형받은 상태다. 생전 고인은 모욕과 폭행, 최저임금법 위반 등을 각종 수사기관에 제보했다. 고용노동부는 고인 사망 이후 뒤늦게 해성운수를 근로감독했고 그 결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 사실을 확인했다. ‘위법 천지’ 사업장이 방치된 결과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렸다.

2018년 서울시가 퇴출한 불법도급 택시업체도 동훈그룹 계열사

해성운수는 이른바 ‘택시재벌’로 알려진 동훈그룹의 계열사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와 노동당, 공공운수노조가 함께한 대책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동훈그룹은 21개 택시회사에 2천200대 이상의 택시를 운영하고 서울과 수원에 9개의 숙박업소를 가지고 있다. 대책위는 고인 사망 초기부터 모든 계열사의 법 위반 사항을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훈그룹은 정아무개 대표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회사로 가족기업이라 사실상 모든 계열사가 하나의 회사나 다름없이 운영한다는 이유에서다.

동훈그룹 계열사는 실제로 다양한 위법사항이 확인됐다. 2018년에는 서울시가 동훈그룹 계열사 S운수의 면허를 취소했다. S운수가 수년간 4대 보험료를 택시기사에게 전액 부담하게 하는 등 도급택시를 운영한 혐의다. 도급택시는 택시운전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정식으로 회사에 고용된 기사가 아닌 자에게 택시를 빌려주고 영업을 하게 하는 불법 택시운행 형태를 말한다. 서울시는 “허위증거에 이중장부가 확인돼 감차처분을 받고도 해당 업체는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해 서울시를 압박했다”며 “10여년간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 판결돼 업체를 퇴출했다”고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강서구청, 동훈그룹 계열사 위법 확인하고도 묵인

동훈그룹 계열사들은 지난해 부가세 경감분을 택시노동자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서울 강서구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상반기 관할 택시회사 32개를 대상으로 조세특례제한법 위반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동훈그룹에 소속된 8개 회사만이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조세특례제한법 106조의7에 따라 조세당국은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택시 부가세의 99%를 경감해 환급하고 있다. 이중 90%는 택시노동자 운송수입금에 비례해 개인에게 지급한다. 하지만 동훈그룹 8개 계열사는 부가세 경감분을 운송수입금 기준에 따라 지급하지 않아 적발됐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강서구청은 아무런 대책이나 개선명령을 이행하지 않았고 대책위원회는 강서구청에 문제를 제기했다.

전액관리제도 위반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사실도 확인됐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에 따라 동훈그룹 계열사 3개 업체가 사실상 사납금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전액관리제는 법인택시 기사가 수입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제도다. 국회는 2019년 8월 여객자동차법을 개정해 2020년1월1일부터 전액관리제를 의무화했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21개 택시업체가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중 3개사가 동훈그룹 소속이었다. 한 계열사는 2번이나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일이 확인돼 총 4회 적발했다. 문제는 동훈그룹 계열사에서 서울시의 행정처분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책위는 “동훈그룹은 불법사항에 대한 지자체 행정처분에 불복해 각종 소송을 남발해 행정낭비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2년간 적발한 동훈그룹 계열사인 E택시, H운수, D운수 모두 과태료 처분에 불복해 재판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해성운수, 택시발전법·근로기준법도 안 지켜

‘완전월급제 이행! 택시노동자 생존권 보장! 책임자 처벌! 방영환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동훈그룹 계열사는 사실상 택시회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위법을 행했다”고 지적한다. 2019년 하반기에는 고인이 서울시에 진정을 제기해 해성운수가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시는 2019년 254개 택시업체 중 5곳을 조사했고 이중 4개 업체의 택시발전법 위반 결과를 적발했다. 택시발전법 12조는 유류비나 신차구입비 같은 운송비용을 택시노동자에게 전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해성운수는 고인에게 신차 구입비를 전가해 과태료 및 사업 일부정지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해성운수는 최근 노동부 남부지청의 근로감독결과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을 어긴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재직근로자와 퇴직근로자에게 휴일근로수당 및 연차미사용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최저임금은 3천700여만원을 미달해 지급했다. 퇴직금을 1천100만원 미달 지급했고 취업규칙을 변경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설 전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인을 폭행하고 임금을 체불한 해성운수 정아무개 대표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아무개 대표는 법정에서 “민주노총과 노조가 고인을 죽였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정원섭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실장은 “정 대표의 진정 어린 사과와 보상이 있어야 고인의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며 “서울시와 노동부는 동훈그룹 계열사를 전수조사해 위법사항을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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