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총선 정치방침 논의를 위한 1차 정치자문위원회 회의를 개최했다. <제정남 기자>

총선을 앞두고 정치방침 논의에 들어간 한국노총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만들기를 시도한다. 윤석열 정권 심판투쟁 기조를 거두지 않은 상황에서 조합원의 생각을 반영하고, 조직 내부가 균열하지 않고 통합할 수 있는 방향의 정치방침 찾기를 골몰하고 있다.

총선방침 논의 위해 정치자문위원회 구성·가동

28일 한국노총에 따르면 4월 총선에 적용할 정치방침을 정하기 위해 한국노총은 정치자문위원회 구성과 21대 국회·정당 평가 전문가 조사 등을 가동·기획하고 있다. 총선기획단을 중심으로 총선 의제와 요구안을 만들고 각 정당의 공약을 점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열린 1차 정치자문위원회 회의에서는 정치방침에 대한 한국노총의 고민과 해결과제가 논의의 화두가 됐다. 총선과 대선에서 한국노총은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대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정책연대 후보자로 선정, 총선에서 정당을 창당(2002년 민주사회당, 2004년 녹색사민당)하거나, 기존 정당과 공동창당(2012년 민주통합당)을 하기도 했다. 지지 후보나 정당이 당선하면 조직 내부에 별 탈이 없었지만 낙선하면 후폭퐁이 잇따랐다. 이를테면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사실상 패배하자 당시 이용득 위원장은 사퇴했다. 2022년 대선에서 지지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패배하자 김동명 위원장 측근으로 꼽히던 당시 박기영 사무1처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방침을 두고 벌어졌던 내부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번에는 과거 사례가 반복하지 않을까.

정치자문위 회의에서 박상훈 자문위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정치방침은 조직 내 단합과 협력의 기반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지도부 권위를 실추시키지 않는 한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의제의 한 발 진전을 위해 슬기롭게 상황을 개척한다는 목표에서 실용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 사이의 균형감, 정치방침 결정 과정에서의 조직 자율성, 조합원의 다양한 요구 속 조직 통합 등을 논의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정치방침을 두고 한국노총 전체가 갈등하면 총선 이후 대응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정당, 의원 지지 두고 내부 의견 갈려”

이에 대해 정문주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정권 심판을 내건 한국노총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이 상황에서 균형감, 자율적 결정, 통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날 회의에는 적지 않은 산별연맹 정책·정치담당자가 참관했다. 류기섭 사무총장은 “노동의제에 대한 한국노총의 정체성은 합의가 가능하지만 어느 정당과 의원을 지지할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며 “산별은 어느 당과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 관심이 많을 텐데, 앞으로 한국노총이 분열하지 않고 단결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보다 솔직하게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권 심판을 총선방침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는 좋지만 정권이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조직을 끌고 나가려면 모호하거나 중도적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무도한 정권에 대해 심판론이 명확하지 않으면 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해 현장 조합원의 실망감이 생길 것이고 이는 지도부에 대한 불신·한국노총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한편으로는 지역적 이익, 산별의 이익, 개인의 이익에 따라 정치방침 논의과정에서 각자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절차를 잘 진행하고, 균형을 잡고, 현장이 분열하지 않는 길 찾기에 고민이 많다”며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가능하다. 가장 노동자 조직다운 선택을 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자문위는 박상훈 위원장을 비롯해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박성국 전 매일노동뉴스 대표, 황규석 한신대 연구교수 등 4명으로 가동한다. 이들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정당 평가 작업을 진행해 한국노총 정치방침 논의 과정에 참고할 보고서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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