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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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비정규직 공장인 동희오토의 불법파견 소송에서 법원이 제조업 공장에서 이뤄지는 원청의 일반적인 지휘·감독 방식인 작업표준서·사양서를 통한 지시를 축소해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개인에 대한 원청 직원의 지시만 지휘·감독이라며 의미를 좁게 해석한 것이다.

작업 내용·중점관리 등 담은 업무서류 ‘불인정’

18일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1일 선고된 대전지법 서산지원 1민사부의 동희오토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재판부는 “피고(동희오토)가 원고에게 각 개별적·구체적으로 어떤 지휘·명령을 행사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며 “원고가 제출한 증거는 피고가 원고에게 각 개별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원고들이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피고가 원고의 근로와 관련해 각 개별적으로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 실질을 파악할 자료로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노동자들이 제출한 증거는 동희오토가 작성한 작업표준서와 사양서, 운영계획서 등이다. 작업표준서는 공정별로 작업 내용과 중점관리항목, 안전요구사항, 결함발생시 조치요령을 담은 매뉴얼이다. 사양서는 작업내용별로 관리·점검할 사항을 기재한 서류고, 운영계획서는 생산차량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간당 생산량과 생산능력을 정리한 내용이다. 공장 운영과 작업관리 전반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재판부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의 구체적 작업방식을 세부적으로 정해 업무수행 자체에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는 재판부가 지휘·감독의 실질로 원청 관리자의 개입을 전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피고 소속 직원들은 원고들과 함께 작업을 수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자동차를 생산함에 있어 컨베이어벨트의 관리·통제는 전적으로 사내협력업체에서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라인 직접관리 않고 중앙서 통제하는 제조업 공장 몰이해

그러나 1심 재판부의 판결과 달리 작업표준서는 법원에서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인정받고 있다. 대법원도 지난해 7월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작업표준서를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노조를 대리한 강빈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1심 재판부는 개별적 지휘·감독이 없었던 것으로 봤는데 대법원 판결과 배치될 뿐 아니라 제조업 공정에서 집단적 작업표준서 같은 포괄적 지시와 감독을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지휘·감독으로 보는 판례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며 “제조업 공장은 전반적 지휘·명령이 내려오고 작업방식이 주어지면 이를 중앙에서 통제하는 것으로, 개별 관리자가 라인을 돌거나 개별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리는 방식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100% 비정규직 도급공장으로 관리자의 직접 개입을 없애 불법파견 소지를 피해 가고자 했던 원청의 의도를 법원이 인정해 준 것이다.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 동희오토분회(분회장 심인호)는 항소할 계획이다. 심인호 분회장은 “패소를 예상하지 못해 전반적 활동을 재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지방법원일 뿐이고 고등법원과 대법원이 남았다”고 말했다.

한편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의 경차인 레이·모닝과 부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기아자동차와 부품사가 합작한 공장으로, 생산직을 원청 노동자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만 고용했다. 열악한 처우와 노동권 등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됐고 2020년 심 분회장을 비롯한 노동자 15명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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