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경진여객운수지회 조합원들이 22일 수원역 앞에서 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수원시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를 운행하는 경진여객운수 노동자들이 22일 하루 전면파업에 나섰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경기지부 경진여객운수지회는 이날 발표한 결의문에서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파업에 돌입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버스노동자들이 파업까지 감행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파업에 참가한 경진여객운수 버스노동자들을 만났다.

노선·버스수는 그대로인데 회당 운행시간 줄여
배차시간이냐 안전운행이냐, 선택은 노동자의 몫?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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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매년 ‘급출발, 급정거를 하지 말라’고 교육해요. ‘손님이 앉으면 출발하라’고 해요. 그런데 회사는 배차시간을 안 맞췄다고 경위서나 시말서를 쓰래요. 안전하게 운전할 수가 없는 조건이예요.”

경진여객운수에서 가장 혼잡도가 높은 7770번 버스를 운행하는 이청수(57)씨가 말했다. 수원역과 사당역을 오가는 이 버스를 맡은 10년 차 버스노동자 이씨는 “난폭운전에 내몰린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하루에 수원역부터 사당역을 3회 왕복한다. 하루 8시간에서 9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지만 두 번째 왕복 운행부터는 정해진 배차시간 안에 들어오기도 버겁다.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손님이 타자마자 문을 닫고 출발”하지만 운행을 마친 뒤 화장실 들를 짬조차 없다. 이씨는 “경기도 공공버스로 전환되면서 버스 혼잡도를 줄인다며 증차는 하지 않고 1회 운행시간만 줄였다”며 “노선은 그대로인데 3시간20분까지 주던 1회 운행시간이 2시간30분으로 줄어 버리니 (버스가) 정해진 배차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한다”고 말했다. 회사에 감회나 배차시간 조정을 여러 번 요구했지만 사모펀드가 잠식해 버린 회사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과 대화할 수는 없었다.

수원시 호매실동부터 사당역까지 왕복하는 7800번 버스를 운행하는 박아무개(59)씨도 “교통신호와 안전법규를 정말 지키면서 다니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진여객에서만 12년을 운전한 베테랑 버스노동자 박씨는 “도로 위에서 매일같이 전쟁이 벌어진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2020년에는 하루 21대였던 7천800번 버스가 지금은 하루 27대로 늘고 승객 8천명을 수용하게 됐는데도 배차시간은 그대로”라고 비판했다.

경진여객운수 노동자들은 경기도 공공버스로 전환된 이후 하루 2교대 근무를 한다. 주별로 오전조, 오후조로 나뉘어 하루 9시간 동안 최소 3회 이상 왕복운행하는 노선을 탄다. 차고지부터 회차지점을 찍고 다시 차고지로 돌아온 뒤에야 버스노동자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지만 짧은 배차시간 때문에 휴식시간은 짧기만 하다. 박씨는 “주유도 하고 차량 검사도 해야 하고 밥도 먹고 화장실에도 가야하는데 이걸 다 하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다”며 “앞 차가 서두르면 뒷 차도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달리다 보니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증언했다.

“준법운행 뒤 사고율 현격히 줄어”
“무리한 배차로 사고 나는데, 징계 완화해야”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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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회는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11차에 걸쳐 임금·단체교섭을 했다. 핵심 쟁점은 ‘배차시간 조정’과 ‘징계양정 완화’다. 도로 관련 법규의 지속적인 개정 때문에 도로여건이 바뀌니 운행시간을 조정해 달라는 요구다. 사측이 고지한 배차시간을 지키려면 안전운행이 어려워 과속운전을 방지하고 승객과 버스노동자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대화부터 하자는 게 노조 안이다.

징계양정 완화는 배차시간 조정과도 연계된 문제다. 현재 사규상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액 구간별로 정직 기간이 달라진다. 손해배상액이 500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이면 10일 동안 정직이고 배상액이 3천만원을 넘으면 해고다. ‘경차랑 부딪치면 정직이지만 외제차랑 사고가 나면 해고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리한 배차시간 때문에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모든 책임이 버스노동자에게만 전가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0일부터 지회는 쟁의행위 일환으로 ‘준법운행’을 시작했다. 박씨는 “준법운행 이후 사고율이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준법운행이라지만 “사실상 안전운행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모든 도로 교통 법규를 지키는 안전운행을 하면 운행 횟수가 현격히 줄어든다. 정류장에 승객이 있을 때 서고, 승객이 탑승한 뒤 좌석에 앉으면 출발하며 안전운행을 하니 사고율이 줄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우리의 안전은 곧 승객의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버스노동자들은 “사모펀드가 들어오면서 사측과 대화가 더욱 어려워졌다”고도 입을 모았다. 사모펀드 회사인 자비스자산운용은 K1 모빌리티 그룹을 만들어 버스 운송사들을 사들였다. 용남고속·제부여객·경진여객과 수원여객 등이 K1에 소속돼 있다. 이청수씨는 “사모펀드는 경진여객운수 말고 다른 회사들도 갖고 있는데 경진만 노동조건을 좋게 해 주면 처우가 더 나쁜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냐는 입장”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전운행뿐”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이날 오전 수원역 앞에서 파업결의대회를 열고 492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지회 관계자는 “13일부터 부분파업을 했지만 경기도도, 회사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회가 전면파업에 돌입했지만 예정된 교섭일정은 없다. 지회는 23일은 정상운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쟁의대책위원회 논의에 따라 다시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도 높다.

경진여객운수 사측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경진여객은 현재 경기도 공공버스 중 휴식시간이 가장 길다”며 “이 같은 조건 때문에 운행횟수 조정을 건의해도 경기도가 받아들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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