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짜여진 집회에 가로막힌 행진, 선을 넘지 못하는 투쟁. 조합원들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윤석열 정권 퇴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송곳 같은 투쟁을 만들어야 할 때다.”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출마한 기호 2번 박희은(47·사진) 위원장 후보는 ‘다르게 강렬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박 후보는 전국 순회 합동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선거에 무관심한 조합원들의 냉소를 마주하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는 그는 한상균 집행부 시절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내걸고 사회적 총파업을 기획했다. 대구본부 사무처장으로 일할 때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은폐 의혹이 있는 대구고용노동청장 직위해제 투쟁을 하기도 했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1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박희은 후보를 만났다.

“무기력한 민주노총, 달라져야 할 때”

- 왜 출마를 결심하게 됐나.
“민주노총은 현장과 멀어지고 존재감을 잃었다. 현장을 다녀 보니까 지난 3년에 대한 평가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윤석열 정권하에 조합원들은 매일이 고통이었다. 사업장 안에서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의 투쟁을 펼쳐 왔지만 민주노총은 이를 모아 내는 투쟁으로 만들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는 현장의 절실한 요구, 정권에 맞서 이기려면 민주노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출마하게 됐다.”

- 현재 한국 사회를 진단해 달라. 핵심 의제는.
“과거처럼 단위 사업장의 고용안정 투쟁이 아닌, 총노동의 체제전환 투쟁이 가장 중요한 의제이고 정권·자본과의 주요 대립점이다. 경제위기·기후위기 같은 기존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자본에 더 큰 권력을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전방위적으로 노동탄압에 나서며 동시에 민영화, 구조조정, 불안정노동 확산 같은 자본의 이윤을 높여 주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본과 정권에 끌려가지 않고 공공성과 노동권을 확대하고, 총고용을 보장하고, 국가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체제전환을 이끌어 내야 한다.”

- 직전 집행부 공과 과를 평가한다면.
“지난 3년간 건설·화물·조선하청 노동자를 비롯해 산별노조와 사업장 곳곳에서 전력을 다해 싸웠다. 그런데 이 각각의 투쟁이 산별의 싸움, 사업장의 투쟁으로 축소됐다. 지난 3년에 대한 기억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현장에서 ‘집회는 정말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경투쟁 이후 막상 돌이켜보면 ‘오늘 뭐했지’라며 힘이 빠진다고 한다. 윤석열 정권 퇴진으로 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싸움들이었는데도 현장의 투쟁으로 정세를 뚫을 만큼 힘 있게 투쟁을 펼치지 못했다. 물론 집행부 1년 차에 코로나 정세에서 광장을 뚫으려고 하고, 거리의 투쟁을 만들려고 했던 점은 의미 있게 평가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1년6개월을 되돌아봤을 때 코로나로 인해 광장을 뚫지 못한 게 아니었다. 총연맹이 버텨야 산별노조와 사업장에서도 버틸 힘이 생기는데, 노조회계공시 결정 등을 통해 싸울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린 점도 문제다. 정치·총선방침 결정과 관련해서도 패권적 조직운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다시 자랑스러운 민주노총으로,
‘윤석열 이후’ 전망 제시하겠다”

- 민주노총이 조합원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괴리됐다는 평가도 많다.
“잘못된 정책에 맞서 제대로 싸울 때, 시민들에게 우리가 싸우는 이유가 뭔지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 양경수 후보의 공약을 보면 집회문화 혁신을 위해 ‘100인 기획단’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집회 무대를 어떻게 잘 보여주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합원들이 집회에 와서 연설만 듣고 무기력하게 가는 게 아니라 분노를 거리로 표출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분노를 다시 조직하는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한다. 제대로 ‘맞짱’ 뜰 때 박수도 받을 수 있다. 다만 민주노총을 향한 ‘조합주의’ ‘이기적 집단’ 같은 비판에 대해선 어느 정도 수용하고 바뀌어야 할 필요도 있다. 비정규직·청년·여성의 투쟁을 후순위가 아니라 중심의제로 끌어 올려야 한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으로 사회적 역할을 할 때 여론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 기호 2번 후보조는 이러한 측면에서 체제전환 민중총궐기로 가는 과정 속에 1년 차에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내걸고, 2년차에는 여성·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같은 의제별 총파업을 조직해 가려 한다.”

- 지난 3년간 ‘집회는 많았는데 제대로 된 투쟁, 모아내는 투쟁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앞으로 3년의 투쟁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건지 잘 안 보인다.
“총파업 시기든 방식이든 내용이든 다 다르다. 차원이 다른 투쟁을 다시 만들어 보겠다. 조합원들이 2015년 직선 1기 한상균 집행부 때 ‘원 없이 투쟁했다’는 말도 하고, ‘민주노총이 자랑스러웠다’는 말도 한다. 그 투쟁을 함께 기획한 동지들이 기호 2번으로 구성된 만큼 실력과 경험이 있다. 물론 조합원들이 함께 만들었고, 시민들이 함께 싸우면서 가능했던 투쟁이다. 물꼬를 트는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 한다.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는 투쟁을 다시 한번 만들겠다.”

-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체제전환전략특위 구성·운영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윤석열 정책 반대와 정권 퇴진을 넘어 이후를 모색하고, 모아 내는 기구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정부와 자본은 시장주의로의 체제전환 움직임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공성은 후퇴하고 노동권 또한 말살되는 형국이다. 여기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분절돼 있다. 예를 들어 민영화 저지 싸움은 철도노조 투쟁으로, 산업전환 대응은 금속노조 투쟁으로 축소돼 있다. 정부 정책에 맞선 각론적 대안이 없는 게 아니라 총론이 부재한 상황이다. 체제전환특위는 국가책임 강화와 공공성·노동권 강화라는 방향으로 총론을 만들어 가기 위한 밑그림을 짜는 역할을 할 것이다. 차기 집행부는 총선부터 지방선거, 대선까지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퇴진 이후 새로운 체제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기호 1번 후보조는 선거연합을 통한 의회 입성이라는 의회주의로 귀결되는 방식이다. 2번 후보조는 의회로의 진입이 아니라 퇴진투쟁 속에서 체제전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제시할 것이다. 현재 윤석열 퇴진운동본부 안에서는 퇴진이냐, 심판이냐에 대한 논쟁이 여전하고 친민주당 세력도 포함돼 있어 선명성이 부족하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정치·총선 방침 이견 여전, 패권주의 불신 해소 못 해”

- 민주노총 정치·총선 방침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22대 총선과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대의원대회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다만 신뢰와 합의를 전제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여전히 현장은 불신이 가득하고 이견이 많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현장에서도 이견이 없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같은 힘으로 밀어붙였던 경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했다. 신뢰와 합의를 전제로 한 정치·총선 방침이 이행되도록 노력하는 게 차기 집행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진보정치가 다원화한 현실 속에서 이를 무리하게 한 줄로 세우는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후보단일화나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간 공동활동, 공동공약 등 신뢰를 쌓고 접촉면을 넓히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보다 구체화된 총선방침은 활발한 토론으로 결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화력발전소 폐쇄 지역에서는 체제전환 기후단일후보를 내고, 재벌사 소재 지역에서는 반재벌 단일후보를 내는 식으로 미래 공동활동을 담보하고 사회 쟁점화될 수 있는 의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총선 이후 윤석열 정부의 노선 변화가 있다면 민주노총의 대응도 달라질 수 있는지.
“윤석열 대통령의 노선 변화가 있다면 당연히 민주노총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 변화의 징후는 전혀 없는 상황이고, 이를 기대하며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민주노총은 단순히 윤석열이 미워서 싸우는 게 아니다. 윤석열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 반동과 역행이 투쟁의 대상이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만나는 수많은 ‘윤석열들’이 있다. 노동개악·직장갑질·악성민원의 얼굴로 노동자들에게 다가오는 ‘윤석열들’에게 맞서는 투쟁, 이렇게 규정할 때 비로소 민주노총의 투쟁이 ‘나의 투쟁’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수많은 윤석열이 건재하는 이상 존중받는 노동과 인간다운 삶을 향한 민주노총의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여성노동자 사업, 더 활발히 할 때”

- 당선시 첫 여성 위원장이 된다. 비전을 말해 달라.
“임기 내 ‘여성 총파업’을 제대로 한번 조직해 보고자 한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여성조합원 조직률이 40%대 이상이다. ‘30%’를 기준으로 한 여성할당제를 다시 평가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할당을 채우지 못하는 곳, 숫자는 채우지만 의미는 퇴색된 곳에서는 어떻게 여성의 목소리를 확대할 것인지 고민도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가 연동돼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여성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 성차별 문제, 조직문화 문제 등에 대한 사업도 조금 더 활발하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같은 문제에는 국제연대를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 정부가 이주노동자 공급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늘어나는 이주노동자를 민주노총이 어떻게 포괄할 수 있을지.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으로 인해 이주노동자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간 연대와 공동투쟁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유럽·호주도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사활을 걸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는데 민주노총도 전면적으로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노동자 국제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가깝고 실천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송출국가와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국가의 노조 간, 노총 간 연대도 굉장히 중요하다. 예컨대 네팔에서 고용허가제로 우리나라에 인력이 들어오면 네팔노총과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글=어고은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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