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달서구 용산동 대구지법 서부지원 청사 전경. <홍준표 기자>

노동자가 철강공장에서 작업 중 철판에 허벅지를 베여 저혈량 쇼크로 숨진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제조업체 대표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중대재해처벌법 22번째 기소 사건이자 9호 선고다. 회사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처벌 전력이 있는데도 벌금형이 법정형 상한선(50억원 이하)에 한참 못 미치는 벌금 7천만원이 선고됐다.

법정형 상한 50억원인데, 법인 벌금 겨우 7천만원

대구지법 서부지원 형사2단독(김여경 판사)은 9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대구 달성군 소재 철강 가공품 제조업체 ‘정안철강’ 대표 A(56)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인에는 벌금 7천만원이 선고됐다.

이날 선고는 검찰이 올해 7월27일 기소한 지 약 3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나왔다. 지난달 12일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 구형이 이뤄졌다. A씨측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안전의무 위반으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으므로 반복되는 중대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특히 정안철강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유족과의 합의’를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피해자 유족과 합의한 점, 사고 발생 후 안전통로를 설치하고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정비하는 등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중대재해 판결과 유사한 고려사항이다.

‘작업통로 미설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정안철강 소속 B(사망 당시 59세)씨는 지난해 9월15일 오후 2시49분께 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중 공급기에서 강관 생산설비로 투입되는 원재료(띠강)에 허벅지를 베여 목숨을 잃었다. B씨는 약 8미터 떨어진 하수구에서 소변을 본 후 작업장소로 돌아오기 위해 띠강을 넘으려 하던 중 뒤로 넘어져 허벅지를 베였다. 당시 띠강은 초속 3.6미터의 속도로 공급기에 투입되고 있었다. B씨는 병원으로 즉시 이송됐지만, 그날 오후 9시께 하지열상과 혈관 손상에 따른 저혈량성 쇼크로 숨졌다.

수사 결과 안전 통로가 설치되지 않았고, 출입을 금지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생산설비 건너편에 출입문이 있어 작업자들이 흡연이나 용변을 위해 평소 띠강을 타 넘거나 아래로 지나가는 일이 잦았다. 설비에 자동 투입되는 띠강에 의해 재해가 일어날 개연성이 컸다. 그러나 A씨는 안전한 작업통로를 설치하거나 출입금지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지시했다. 이미 회사는 지난해 3월 수차례 산업안전기술원의 기술지도를 받았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A씨를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A씨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및 반기 1회 이상 점검(4조3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및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4조5호)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안철강은 직원 100명을 사용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37년 중견기업의 사고 “또 솜방망이 처벌”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 전력이 있는데도 법정형이 지나치게 낮다고 입을 모은다.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위험물 취급사업장에서 최소한의 안전확보를 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인식이 낮아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노동자가 죽은 뒤에야 안전통로를 설치한 점을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은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박다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회사는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데도 고작 벌금 7천만원이 선고됐다는 점에서 법원이 죄의 무게를 정하는 근거나 기준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종연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업력이 37년인 중견기업에서 안전통로가 없어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지나치게 처벌이 가볍다”고 꼬집었다.  회사 관계자 1명과 함께 출석한 A씨는 선고 직후 “선고 소감이 어떤가” “사고 이후 어떤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했나” “항소할 것인가” 등 <매일노동뉴스>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법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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