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청산을 선언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18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8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반면에 회사가 부담한 법인세비용은 410억원뿐이다. 그래놓고 노동자 13명을 고용하지 않고 빠져 나가려 한다. 외투기업의 이런 ‘먹튀’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편집자주>

▲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일본 닛토덴코는 한국에 구미공장과 평택공장을 두고 있다. 각각 별도 법인으로 돼 있으며(평택공장 법인은 한국니토옵티칼) 양쪽 법인 사장 모두 하기와라 미치히로라는 동일 인물이었다. 똑같은 생산물품인데 왜 법인을 별도로 만들었을까? 답은 공급망에 있다. 구미공장이 주로 LG디스플레이 쪽 납품을 맡았다면, 평택공장은 삼성 쪽에 납품하는 구조였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2017년까지만 해도 매년 당기순이익은 200억~500억 원을 기록하다가 납품처인 LG디스플레이가 생산거점 상당 부분을 중국으로 옮기기 시작한 2019~2020년에는 처음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문제는 영업실적이 나빠지던 이 시기에 극적으로 변화한 현금배당 성향이다. 매년 10억~20억원에 달하던 본사 현금배당은 영업이익이 줄어들던 2016~2018년에 100억원 이상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매출액이 급감해 큰 폭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2019년에는 무려 1천63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하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수상한 2019년 거액의 현금배당 전과 후의 이익잉여금은 완전히 달라진다. 1천억원대를 유지하던 이익잉여금은 2019년 현금배당 이후 10억원 밑으로 급감했다. LG디스플레이 생산의 중국 이전 이후 닛토덴코의 한국 자회사 전략이 ‘언제든 청산이 용이하도록 가능한 최대로 몸집을 줄여놓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지난해 10월 화재 사고가 터지게 된다. 불과 6개월 전인 2022년 4월, 코로나19로 생산이 중단된 상하이공장 대체생산을 늘려야 한다며 신입사원을 100명 넘게 뽑았던 닛토덴코의 태도가 돌변해 전광석화처럼 청산을 결정했다는 사실 역시 오래전부터 한국 자회사 전략이 변화했음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아무리 외투기업이라 할지라도 ‘청산’ 결정을 아주 쉽게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외투기업, 특히 제조업이 한국에 들어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납품하는 고객사(원청사)가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납품과 거래관계를 유지·존속시키는 것은 이윤을 뽑아 먹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닛토덴코가 구미공장 청산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데는 평택공장의 역할이 컸다. 구미공장에서 생산해 LG디스플레이로 납품되던 물량은 평택공장에서도 생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구미공장 물량은 고스란히 평택공장으로 이전됐고, 갑자기 물량이 늘어난 평택공장은 수십 명의 노동자를 신규로 채용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은 고객사(원청사)인 LG디스플레이의 양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코로나19를 전후해 부품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공급망 관리’는 최종 조립을 담당하는 대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 있다. 그런데 구미공장을 언제든 청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여차하면 삼성에 납품해 온 평택공장에서 대체물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데, 삼성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LG디스플레이 모르게 진행했을 리가 없다.

이미 한국와이퍼 사태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9월 MBC 보도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덴소그룹은 납품처인 현대자동차에 한국와이퍼 청산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LG디스플레이 역시 편광필름을 LCD 모니터에 흡착시킨 후 애플사로 납품해야 한다. 매일같이 구미공장의 상황을 체크하고 관리하고 각종 리뷰를 실시한다. 그런데 청산과 대규모 정리해고, 생산물량의 이전 문제를 미리 알지 못했을 거라고?

세계 경제와 무역 질서에서 가장 중요해진 것이 공급망이다. 이 공급망 내에서 벌어지는 노동기본권을 비롯한 인권침해와 환경피해 등을 공급사슬 위쪽에 있는 대기업이 조사하고 해결할 것을 의무화하는 공급망 실사 제도가 올해 6월에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회의에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추가됐다. 닛토덴코도, LG디스플레이도 이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생산물품도 같고 납품관계가 바뀐 것도 아닌데 한쪽에서는 청산과 대규모 정리해고가, 다른 한쪽에서는 신규채용이 벌어지는 사태야말로 중대한 노동기본권·인권 침해 아닌가. 빠른 시일 내에 이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공급망의 최상층인 애플사를 찾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단 닛토덴코와 LG디스플레이의 답변과 해결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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