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무재해기록판은 화재가 났던 지난해 10월4일에 멈춰 있다. <이재 기자>

공장 전소 뒤 법인 청산과 공장 철거를 결정한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자매법인인 한국니토옵티칼이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노동자 30명을 신규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옵티칼 노동자 13명은 구미공장 부지에서 공장 재가동 또는 한국니토옵티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200일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다.

화재 뒤 11개월 중 9개월간 채용 꾸준

17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니토옵티칼의 고용보험 취득자 현황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월4일부터 지난달까지 한국니토옵티칼의 신규채용 인원은 30명으로 올해 2월과 5월 두 차례를 제외하면 매월 채용했다. 10월4일은 한국옵티칼 구미공장이 전소된 날이다.

한국니토옵티칼과 한국옵티칼은 모두 일본 닛토덴코 그룹의 한국 자회사다. 두 곳 모두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데, 한국니토옵티칼은 삼성디스플레이에, 한국옵티칼은 LG디스플레이에 주로 납품했다. 닛토덴코는 2016년께 두 자회사 통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각각 납품업체 분리를 원해 실제 이뤄지진 않았다.

한국옵티칼은 지난해 10월4일 공장 전소 뒤 노동자 130여명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남은 13명을 정리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으로, 공장을 재가동하지 못한다면 자매법인인 한국니토옵티칼로 고용을 승계해달라며 지난 1월30일부터 231일째 농성 중이다. 지회는 한국니토옵티칼이 신규채용을 지속해 노동자 13명 고용승계 여력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신규채용 현황을 통해 이런 주장이 사실로 처음 드러났다.

한국니토옵티칼이 고용을 늘릴 수 있었던 배경은 화재로 생산이 막힌 한국옵티칼의 LCD 편광필름 물량이 한국니토옵티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물량은 옮기면서 노동자 고용승계는 거부한 셈이라 고용승계를 무리한 주장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수진 의원은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법인 설립 뒤 토지 무상임대나 법인세·취득세 감면 등 막대한 혜택을 챙기면서도 노동자의 고용 여건이나 전직 같은 고용안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폐업을 강행하거나 물량을 옮기면서 노동자를 길바닥에 내몰고 있다”며 “이런 외국계 기업의 이른바 ‘먹튀’ 문제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출 하락 빌미로 희망퇴직하고도 순이익 260억원

한국옵티칼은 2003년 11월 경북 구미 4공단 외국인투자지역에 입주한 기업이다. 구미시로부터 연면적 3만제곱미터 규모의 공장 부지와 사무동, 기숙사 같은 토지를 50년 무상임대 받았다. 법인세와 취득세도 감면 혜택을 받았다.

일본 닛토덴코 그룹은 한국옵티칼과 한국니토옵티칼 외에도 한국닛토덴코, 닛토덴코니톰즈코리아 같은 4개 법인을 운영 중이다. 한국옵티칼은 한때 지역을 대표하는 견실한 기업이었다. 2003년 설립 이후 2016년 매출 1조원을 넘겨 지역언론에 회자됐을 정도다. 노동자도 많을 땐 800명에 달했다.

매출이 하락하기 시작한 건 주요 거래처인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이 파주로 이전한 2017년 이후다. 주요 거래처가 사라지면서 매출이 하락했다. 급기야 사용자쪽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노동자는 2차 희망퇴직이 끝난 시점에 56명 규모로 줄었다. 2017년께 노조가 설립됐지만 희망퇴직 당시에는 특별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당시에도 지회에 따르면 매출 4천억원, 순이익 260억원 성과를 냈다.

코로나19 확산은 이후 반등의 기회가 됐다. 닛토덴코 그룹의 상하이법인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동을 중단하면서 2022년 4월 해당 물량이 한국옵티칼에 배정됐다. 회사는 활기를 되찾았다. 56명에 불과했던 노동자는 다시 늘었다. 한국옵티칼은 1·2차 구조조정 당시 퇴직했던 노동자를 계약직으로 다시 불렀다.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일을 계속 맡겼다.

화재 뒤 정리해고, 노동위는 번번이 구제신청 기각

지난해 10월4일 공장에 불이 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편광필름 제조에 필요한 화학물품도 많다보니 진화가 어려워 공장이 전소한 뒤 꺼졌다. 당시 한국옵티칼은 몸집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100여명의 신입사원을 연이어 채용했다. 가장 마지막에 출근한 노동자는 화재 전날인 10월3일 첫 출근을 했다. 투자가 이뤄지던 때라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나 직원 모두 청산은 생각하지 못했다.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는 약 1천억원으로 추산됐는데, 화재보험금이 최대 1천300억원으로 예상돼 공장 재건에 무리가 없을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한국옵티칼은 화재 한 달 만인 지난해 11월4일 청산을 문자로 통보했다. 지회는 반발했다. 청산 통보 직후인 지난해 11월과 12월 집회를 열고 청산 결정을 규탄했다, 이후 올해 1월30일부터는 공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사용자는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고 농성에 돌입한 노동자 13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사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마주했다. 지회는 2월14일 경북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경북지노위는 둘을 병합했다. 지회는 구미시청에도 부당함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동위는 사용자 손을 들어줬다. 4월14일 경북지노위는 구제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지회는 5월11일 중노위 재심을 신청했지만 이 역시 8월4일 기각됐다.

물까지 끊은 한국옵티칼, 지회는 고소·고발

중노위의 기각은 변곡점이 됐다. 이미 사용자는 중노위 기각 결정 이전인 7월28일 내용증명을 지회와 노동자 자택으로 보냈다. 8월4일까지 공장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토지사용료 1일 약 140만원과 철거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보상금 1일 약 570만원 합산 금액을 노동자 13명에게 손해배상으로 청구하고 그에 앞서 가압류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옵티칼은 최근 노동자에게 4억원 규모의 가압류를 신청했다. 한국옵티칼은 또 농성장의 물을 끊기도 했다.

지회는 법률 대응을 하고 있다. 우선 가압류 신청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단수에 대해 노조활동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로 경북구미경찰서에 고소했다. 중노위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도 준비 중이다.

한국옵티칼 상황이 알려지면서 외국계 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옵티칼의 가압류 신청 이후 시민단체 ‘손잡고’는 “한국 정부로부터 온갖 혜택을 받고 철수하는 외국자본 먹튀는 처음이 아니다”며 “쌍용자동차와 하이디스테크놀로지, 한국게이츠, 한국와이퍼 등 고용승계 보장 없이 철수하는 외투자본 행태가 계속됐고 그때마다 외투자본 규제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이유가 국민이라면, 국민을 위협하는 기업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장치를 갖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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