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회계서류 비치·보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노동조합에 대한 현장 조사를 위해 서울 중구 금속노조 사무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이를 거부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저임금 노동자의 단결권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조합원 1천명 이상 노조에 회계 공시 의무를 부여했지만, 총연합단체·연합단체·산별노조와 같은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1천명 미만 노조도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월급이 적어 조합비가 부담스럽지만, 연말 소득공제를 기대하고 노조에 가입한 저임금 노동자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대 노총 회계장부 미공개시
245만명 조합비 세액공제 제외될 수도

고용노동부는 5일 “노동조합 회계공시와 조합비 세액공제 연계하는 정책을 올해 10월1일부터 시행할 수 있게 추진하겠다”며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 종료일은 이달 11일이다.
시행령이 시행되는 날 노조 결산결과를 공시하는 ‘노동조합 회계공시 시스템’ 운영도 동시에 시작한다. 노동부는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고려”해 제도 시행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소득세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회계를 공시하지 않은 노조의 조합원은 올해 10~12월부터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이럴 경우 1년 단위로 정산하는 소득신고나 세액 산출을 1~9월과 10~12월로 나눠야 한다. 세금 감면액을 도출하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해질 수 있다. 노동부는 “조합원이 소속된 노동조합(산하조직)과 그 상급단체가 모두 결산결과를 공시하면 조합원이 납부한 조합비 세액이 공제된다”며 “다만 2022년 12월31일 기준 조합원수 1천명 미만인 단위노동조합(산하조직)은 공시하지 않아도 그 상급단체가 모두 공시하면 조합비 세액공제를 한다”고 설명했다.
가령 총연맹단체(양대 노총) A산별노조(혹은 연맹)에 가입한 B기업 지회(혹은 노조)는 조합원수가 1천명 미만으로 자체 회계 공시 의무가 없다. 하지만 총연맹단체와 A산별노조 중 한 곳이라도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조합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양대 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대부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 293만2천672명 중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은 83.5%를 차지한다. 양대 노총은 정부의 회계장부 제출 요구가 노조의 자주권을 침해한다고 거부해 왔다.

저임금 노동자, 특고에 파급력 커

정부 정책에 저임금 노동자의 조직력 약화가 우려된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정부가 서둘러 시행하려는 회계공시 조건부 세액공제 선별 적용은 고용특성상 초기업단위노조로 모일 수밖에 없는 기간제 비정규직, 공무직, 다단계 하층구조에 놓인 간접고용 특수고용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혼란을 가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정호 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은 “교육공무직 노동자는 임금이 낮아 소득세나 주민세를 떼고 난 뒤 연말정산을 하면 보통 전액을 돌려 받는다”며 실질적으로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짐작했다. 박 정책실장은 “많지 않더라도 조합비 부담을 이유로 한 노조 탈퇴가 있을 수 있다”며 “조합비 때문에 노조 가입을 망설일까 봐 노조 가입을 안내할 때 조합비를 내도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는 학교에서 일하는 급식노동자나 교육행정지원사 등 교육공무직 노동자가 소속돼 있다. 최저임금을 약간 넘는 임금을 받는다.
특수고용직 노조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배달노동자 A씨는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은 근로자와 같은 소득을 벌어도, 사업자라는 이유로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더 많이 낸다”며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금액의 문제를 떠나 노조를 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도 커질 것”이라며 “정부가 노동시장 약자를 보호한다면서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세액공제가 제외되면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노동조합을 탈퇴 여부를 고민할 것”이라며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한 기구로서 노조가 필요한데, (조합비 세액공제 제외 조치로) 노조 가입에 주저함이 따를 수 있다” 설명했다.
실제로 고용이나 소득이 불안정한 직종은 조합비를 최대한 낮춰 노조를 조직한다. 2019년 출범한 라이더유니온은 처음 조합비 5천원을 받다가, 차츰 조합비를 올리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다.

“내년 총선 앞두고 노조 돈줄죄기 겨냥”

정부가 노조 회계장부와 조합비 세액공제를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가 내린 산별노조 집단탈퇴 금지 규약·규정 시정명령과 궤를 같이 한다. 조합원이 1천명 미만인 노조는 상급단체 방침에 따라 세액공제가 제외될 경우 산별노조·총연합단체 등 상급단체 탈퇴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총연합단체 탈퇴는 노동단체 구심력 약화로 이어진다. 양대 노총 힘빼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노총은 “직장인 연말정산 시즌을 앞두고 다급하게 시행령 시행시기를 앞당긴 것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노동조합과 상급단체를 옥죄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김하늬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차장은 “산별단위의 교섭과 쟁의행위는 현장에서 인정하지 않으면서 조합비가 공유된다는 이유만으로, 상급단체 회계 미공시를 근거로 소속 노조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산업별 협회에 가입한 기업이 돈을 낼 경우, 협회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랑 같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흥준 교수는 “노조에 대한 사회적 고립, 영향력 축소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종교단체는 사회적 의미를 이유로 소득공제를 하는데, 노조 조합비를 소득공제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의지”라고 지적했다.
법적 타당성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별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는 산별노조 혹은 직가입 노조가 총연합단체에 내는 ‘가맹비’와 성격이 다른데, 총연합단체의 회계 미공시를 이유로 총연합단체에 가맹된 1천명 미만 노조도 조합비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박주영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상급단체에도 공시의무를 부여해 상급단체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을 때 산하조직에도 조합비 세액공제 제외라는 불이익을 부여하는 것은 노조 회계공시 의무가 1천명 이상 사업장 조합원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는 의미”라며 “1천명 이상 회계 공개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또 회계 공개 의무는 상급단체를 포함한 노조에 부여하면서 그로 인한 불이익은 개인 조합원에게 주고 있다”며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 중 일부를 상급단체가 받은 것이 명확히 확인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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